우리나라 흔적
오사카·교토·에도
오사카 – 항구·이민·코리아타운의 도시. 행정구역으로 오사카부에 속하는 히라카타(枚方) 일대는 ‘구다라(百済)’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히라카타의 백제사지(百済寺跡)는 백제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온 백제 왕족 후손 백제왕씨(百済王氏)의 씨사(氏寺)로, 8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백제”라는 국명이 지명·유적 이름에 그대로 남아 있고, 현지 안내판에도 “한반도 백제 왕족 후손이 세운 절”이라고 명시돼 있어서 오사카권에서 가장 직접적인 한국(백제) 흔적 중 하나로 꼽혀.
조선 시대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Joseon Tongsinsa) 는 17–19세기 사이 부산 – 대마도 – 세토 내해 – 오사카 – 교토 – 에도 루트를 따라 도쿠가와 막부를 방문하던 대규모 외교사절단.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에는 「천화 조선통신사 도착 행렬도 병풍」(天和朝鮮通信使登城行列図屏風) 등 통신사가 오사카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그린 병풍들이 소장.
오사카 시내에서 가장 “한국”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쓰루하시역 일대 – 이쿠노구 코리아타운. 오사카 이쿠노구는 인구의 약 20%가 외국 국적이고, 이 중 상당수를 한국·조선 국적 및 그 후손인 재일코리안이 차지. 이쿠노구의 “이쿠노 코리아타운(生野コリアタウン, Miyuki-dori 상점가)”는 약 500m 거리에 120–150여 개의 한국 식당·잡화점·K-뷰티·K-POP 샵이 몰려 있는 일본 최대급 코리아타운으로, 2021년에만 약 200만 명이 방문했다고. 지금은 골목마다 김치·떡볶이·순대·한국식 고기집, 한글 간판이 가득하고, 2023년에는 이 역사를 정리한 오사카 코리아타운 뮤지엄까지 문을 열어 재일코리안의 삶과 차별·투쟁의 역사, 그리고 한·일 문화 융합을 보여주고 있어.
교토 – 백제 미륵의 미소와 임진왜란의 상처. 고류지(広隆寺 / Koryu-ji)는 603년에 세워진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한반도계 이민 집단인 하타씨(秦氏) 와 연관된 사찰로 알려져 있어. 이 절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일본 국보 1호가 된 “미로쿠 보살 반가사유상”. 『일본서기』에는 이 상이 신라 왕이 쇼토쿠 태자에게 보낸 불상이었다는 전승이 있고, 실제 조형·옷 주름·관 형태 등이 한국의 국보 제83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거의 쌍둥이 수준이라는 것이 미술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평가.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이 고류지 반가사유상은 “원래 한국(신라/백제)에서 제작된 상이 일본에 전해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우세. 교토의 황실 사찰 센뉴지(泉涌寺) 에는 화가 가노 마스노부가 그린 조선통신사 행렬 병풍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조선 사절을 그린 가장 이른 예 중 하나로 평가.
에도(오늘날 도쿄)는 조선통신사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던 종착지. 1607–1811년 사이 12차례 통신사가 에도를 방문했으며, 당시 일본은 이 거대한 사절단을 “조선이 일본을 승인해 준 증거”이자 정권의 위신을 보여줄 정치 이벤트로 활용. 도쿄도 에도도쿄박물관의 「조선통신사 행렬도 그림두루마리」, 영국박물관의 ‘Procession of the Korean embassy to the shogun’s court in Edo’ 두루마리 등은 에도 거리 한복판을 행진하는 조선 사절단을 매우 자세히 묘사. 한국 국립해양박물관에는 「에도에서 조선까지의 통신사 귀로 지도」 두루마리가 있어 에도(도쿄)에서 교토·나고야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을 한 번에 보여주기도 해.
우에노 공원 안의 도쿄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 아시아관(東洋館)에는 상설 한국실이 있어서, 한국에서 온 유물과 일본에서 출토된 한국계 유물을 함께 전시. 이 전시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경 삼한·원삼국 시대 토기부터 백제·신라의 녹유 토기, 고려청자, 조선 백자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도자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도록 구성돼 있어. 전시 설명에서는 한국 도자가 일본에 수입·산출되면서 일본 중세·근세 도자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즉, 도쿄에서는 박물관 자체가 거대한 “한국 흔적 아카이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
에도의 후신인 현대 도쿄에서, 가장 직접적인 “우리 흔적”은 역시 신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타운. 신오쿠보 일대는 원래 20세기 전반에는 비교적 고급 주택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슬럼화되면서 집값이 싸진 동네가 되었고, 한국·중국 등 외국인 노동자와 재일코리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 특히 1950년대 재일교포 신격호가 세운 롯데 제과 공장이 이 근처에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일하러 온 한인들이 대거 정착했고, 이후 1980년대에는 일본이 유학생·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확대하면서 한국 유학생이 신오쿠보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게됨. 1990–2000년대 들어 한류·K-POP 붐이 일어나자, 이 지역 거리에는 한국식 식당·마트·연예인 굿즈샵·코스메숍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한국 음식·K-POP·K-뷰티의 성지이자 일본 최대 코리아타운으로 자리 잡아. 지금도 길을 걸으면 한글 간판·한국 치킨집·코인노래방, 한국식 길거리 간식(핫도그, 떡볶이, 와플)과 한국 화장품 숍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일본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당연하게 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