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귀무덤(耳塚, 미미즈카)’

우리나라 흔적

by 구포국수

교토 ‘귀무덤(耳塚, 미미즈카)’


교토 ‘귀무덤(耳塚, 미미즈카)’은 “관광지라기보다, 전쟁범죄의 증거이자 무덤”에 가까운 곳. 위치: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도요쿠니 신사 토리이 바로 앞길 옆. 일본어 이름: 耳塚(みみづか, 미미즈카) – 귀 무덤. 실제 성격: 이름과 달리, 귀만이 아니라 ‘코(鼻)’를 잘라 가져와 묻은 무덤이라서 원래 이름은 코무덤(鼻塚, 하나즈카) 이었음. 나중에 이름이 너무 끔찍하다고 해서 ‘귀무덤’으로 순화. 조성 시기: 1597년(게이초 2년) 9월 28일, 대규모 법요(추도 의식)와 함께 조성.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가져온 조선인·명나라 병사·민간인의 코/귀를 모아 만든 무덤. 오늘날에는 잔디로 덮인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석탑 하나 서 있는 형태.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장수들에게 “죽인 적의 ‘머리’를 베어 와라. 그 수만큼 전공으로 인정하겠다”는 식으로 명령. 그런데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자 머리를 통째로 가져오기가 너무 힘들고, 배도 좁고 썩는 문제도 있어서, 머리 대신 코(귀)를 베어 염장(소금 절임)으로 담아 일본 본토로 보냈어. 일본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이 보고한 숫자는 조선인 머리/코 185,738개, 명군 29,014개 총 214,752개로 기록.


1597년, 히데요시는 호코지(方広寺) 대불전 앞에 코를 매장하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무덤을 만들게 함. 당시 교토시 안내문에도 “일본군은 조선인의 코를 잘라 전공의 증거로 삼았다. 이 코들은 일본으로 보내져 호코지 문 앞에 묻혀, 게이초 2년 9월 28일 대법요가 행해졌다.”라고 쓰여 있음. 원래 이름은 鼻塚(코무덤) 이었으나, 에도 후기에 “이름이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耳塚(귀무덤)로 바뀌었어. 높이 약 9m 정도의 잔디 언덕으로 아래쪽은 석축(돌 쌓기)으로 둘러져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에 석탑(五輪塔 비슷한 형태) 이 서 있어. 석탑에는 범자(산스크리트 문자)와 불교식 명문이 새겨져 있어 겉으로만 보면 일반적인 전쟁 위령비처럼 보임. 1980년대까지는 일본 역사 교과서에 귀무덤 언급이 전혀 없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야 일부 교과서에서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


지금도 일본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주로 한국인 단체 관광버스가 내렸다가 조용히 참배하고 가는 장소라는 말이 많아.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정부 내부에서 “귀무덤을 평탄화해 없애 달라”는 요구를 검토한 적이 있었지만, 다수 한국 여론은 “차라리 그대로 남겨 두어 역사의 잔혹성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쪽이 더 강해. 1997년 9월 28일(조성 400주년)에 일본 시민단체·한국인·외국인 등이 함께 참여한 추모식이 열렸고, 이후에도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위령제를 열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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