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흔적
메이지 산업유산과 강제동원
메이지 산업유산 + 강제동원은, 말 그대로 “일본이 자랑하고 싶은 근대화 유산 안에 박혀 있는 조선인 강제노동의 흔적”.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름이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제철·조선·석탄산업」(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일본 각지에 흩어진 23개 시설·구역을 하나로 묶은 ‘연속 유산’. 시기 설정: 대략 1850년대~1910년경. (막부 말기·메이지기 초~중기까지). 주제: 제철(야하타 제철소 등), 조선(나가사키 조선소 등), 석탄(하시마·다카시마·미이케 탄광 등). 유네스코는 이 유산들이 “서양 기술을 빠르게 도입·응용해, 일본이 세계적 산업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가치로 인정.
문제는, 이 시설들 상당수가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기까지 계속 가동되었다는 점. 그 시기에: 일본이 조선·중국 등을 식민지·점령지로 삼으면서 조선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를 탄광·제철소·조선소로 대량 동원. 극도로 위험한 작업, 장시간 노동, 폭력, 임금 미지급 등 오늘날 국제 기준으로 보면 강제노동에 해당하는 환경. 그 중 7개 시설이 바로 이 메이지 산업유산 23곳 안에 포함되어 있어 세계유산 현장이 곧 강제동원 현장이기도 한, 매우 애매하고도 민감한 구조가 됨.
하시마 탄광 (군함도) – 가장 상징적인 강제동원 현장. 나가사키 앞바다의 작은 인공섬인데, 메이지기 이후 해저탄광으로 개발돼 일본 근대산업의 상징처럼 홍보. 하지만: 한국 정부·연구진은 최대 800명 정도의 조선인이 1943~45년 사이 강제로 동원, 그 가운데 122명이 섬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어. 2021년 확인된 명부에는 하시마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 1,299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들의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조사도 나와.
미이케 탄광 (미쓰이 미이케) - 규슈 오무타에 있는 미이케 탄광도 메이지 산업유산에 포함. 식민지기·전쟁기에는 조선인·중국인·연합군 포로가 대거 노동에 투입. 전쟁 말기의 한 보고에 따르면, 미이케 탄광 포로수용소는 규슈 최대급 규모였고, 각국 포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채굴에 동원됐다고 기록.
야하타 제철소 (현 키타큐슈) - 야하타 제철소(八幡製鐵所)는 일본 근대 제철의 상징으로, 세계유산에도 포함된 핵심 시설. 하지만: 한국·일본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이곳과 주변 관련 시설에 수천 명 규모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어떤 보고서는 11개 관련 현장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숫자가 1,481명 이상이라고 적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