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무사가문
도요토미
도요토미 씨(豊臣氏)는 전국시대 말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운 정권의 “집권 가문”. 도요토미는 원래 오래된 명문 혈통이기보다는 히데요시가 권력을 장악한 뒤 조정(황실/귀족 사회)로부터 ‘도요토미’라는 씨(氏)를 하사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집권 가문’. 히데요시는 혈통 제약 등으로 쇼군(将軍)이 되기 어렵자, 대신 조정의 최고 권위 직책 중 하나인 관백(캄파쿠, Imperial Regent)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세우려 했다고 설명. 1585년 관백이 되기 위해, 귀족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의 양자가 되어 “후지와라 계통의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흐름. 이후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 성/씨를 하사받아 ‘도요토미 정권’이 공식화.
히데요시가 1598년 사망할 때, 아들 히데요리가 어렸기 때문에 정권 운영을 오대노(다이묘 그룹)와 오봉행(행정 실무 그룹)에게 맡겼다고 일본 국립공문서관(국가기록원급) 전시 해설이 정리. 여기서 균형이 무너지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심이 되고, 반(反)이에야스 구도가 형성되며 세키가하라 전투(1600)로 이어지는 흐름. 도요토미 가문은 최종적으로 오사카 겨울·여름 전투(1614~1615)에서 도쿠가와 측에 패배하면서 소멸. 오사카성(大阪城)은 히데요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