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무사가문
모리
모리 씨(毛利氏)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이어져 전국시대에 서일본(주고쿠 지방) 패권을 잡았고, 에도 시대에는 조슈번(長州藩)의 번주로 존속하다가, 막말에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핵심 세력 중 하나로 꼽히는 대표 무사가문. 모리는 오에노 히로모토(大江広元)가 사가미국(相模国) 모리 장원(毛利荘)을 아들 모리 스에미쓰(毛利季光)에게 주면서, 그 장원 이름을 따 ‘모리’를 성으로 삼은 데서 시작. 모리 가문을 ‘전국구’로 만든 인물은 단연 모리 모토나리. 대표 승부수: 이쓰쿠시마(미야지마) 전투(1555) - 1555년 아키국 이쓰쿠시마에서 모토나리가 스에 하루카타(陶晴賢)를 격파한 전투로, 모리의 도약을 상징하는 사건.
세키가하라 전투 후 모리는 완전히 멸문하지는 않았지만, 전후 처리로 영지가 크게 줄어 스오(周防)·나가토(長門) 2국으로 “감봉(減封)”. 감봉 뒤 거점은 하기성(萩城)으로 이동했고, 이후 약 260년간(1863년 야마구치로 번청 이동 전까지) 하기가 번정 중심지로 기능했다고 현지(하기시) 안내에 정리. 에도 시대의 모리 영지는 보통 조슈번(하기번/야마구치번/모리번)으로 불려. 막말에 조슈번(=모리 가문)은 반막부의 핵심 거점이 되었고, 조슈 출신 세력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 모리 박물관(毛利博物館)·모리 가문 정원, 호후(防府): “구(旧) 하기(조슈) 번주 모리 가문 본저(본邸)를 박물관으로 공개”라고 공식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