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다 깊은 4-1

부르심의 길, 우리 가족의 시작

by 권창현

나는 여섯 살의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다.

그 여름,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고 문이 열리는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익숙했던 비행기 안의 시원한 공기는 사라지고,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열기가 기체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왔다.

‘와, 이런 나라도 있구나…’

그 첫 감각은 내 피부가 가장 먼저 적응해야 했던 선교지의 인사였다.


출국 전, 부모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도 선교사지만, 너희도 꼬마 선교사란다.”

그 한 마디는 내 어린 마음 깊이 첫 씨앗처럼 심어졌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씨앗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다.


아내 또한 비슷한 시기를 캄보디아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부모님을 따라 들어간 그 땅은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나라였다.

1970~80년대를 휩쓴 크메르루주 정권의 광풍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생생한 어둠으로 남아 있었다.

무너진 교육 시스템, 고통 속에 자란 이웃들,

그리고 그 가운데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자라났다.


나는 선교사가 되기로 오래전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대학도, 전공도, 사역도 모두 선교라는 삶을 향해 놓인 발걸음들이었다.

MK 사역을 감당하며 GMS의 권유로 선교사 인준을 받게 되었고,

신학 공부와 목사 안수까지 마친 후,

본격적인 파송을 앞두고 아내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두 나라가 고민의 중심에 있었다.

캄보디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각자의 부모님이 사역하고 있는 이 두 나라는

우리에게 각기 다른 부르심의 가능성을 품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다.

그중 아내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응답하시는 그 부르심에, 나는 순종하겠어요.”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열어주실 길은 열어주시고, 아니라면 분명하게 닫아주십시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는 들어갈 수 없었고,

그 부르심은 캄보디아로 분명히 이끌려 갔다.


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자녀들 모두 건강했던 것도 아니었고,

선교지에서의 삶은 늘 예측 불가능했다.

하지만 염려는 없었다.

순종으로 인한 고난은 결국 은혜로 회복될 것이지만,

불순종의 고난은 돌아가야만 하는 막다른 골목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고, 출발했다.

사랑이가 태어난 지 딱 한 달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짐을 쌌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타

이제는 부모로서, 선교사로서,

우리 가정의 새로운 부르심의 땅인 캄보디아로 향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문화는 달랐고, 언어는 낯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조금씩 부딪히고,

부모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

자녀의 교육과 사명의 균형 속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걷는 삶’의 진짜 무게를 배우게 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낯선 땅에서 자라 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삶을 통해 다시 배우는 믿음의 교훈을 나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