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조용히 무너진 날들

by 권창현


안개는 늘 그렇게 찾아온다.

천천히, 소리 없이. 그리고 우리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마음 어딘가를 적시고 있다.


2011년 무렵부터였다. 그의 삶 위에 우울이라는 무게가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한 때. 리버티 대학교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군 복무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예전엔 유쾌하고 생각이 깊던 그 친구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결국 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우울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큼 무거운 일 — 양쪽 신장에서 발견된 종양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완전히 절제하거나 관리 관리밖에 치료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수술을 수술을 거부하고 종양을 남겨둔 채, 그렇게 일상을 계속 살아냈다. 이미 힘들었던 마음에, 그 진단은 또 다른 말 없는 고통을 더했다.


그는 상담을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치료를 받고, 마음을 열어보려 애썼지만, 한때 진지하고 간절했던 그의 믿음은 서서히 풀려나갔다.


기도하지 않았고,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왜 하나님이 나한테 이러시는 걸까?”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이렇게까지 아프게 내버려 두지?”


그는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족도, 나도.


2013년, 내가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야 우리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어느 날, 그는 내 원룸으로 들어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았다.


비좁은 방, 둘 뿐인 공간. 그곳이 잠시나마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 둘의 피난처가 되었다.


어떤 날은 게임하고 웃고, 농담도 나눴지만, 어떤 날은 방 안의 공기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말없이 내려앉는 무게감, 그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함께 견뎠다.


그 후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서울 강서 지역에서 사회복지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했고, 그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을 얻었다.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가까이 머물고자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극단적인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그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를 붙잡고, 안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는 더 이상 붙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해외로부터 그의 전화가 왔다. 그는 대마에 취해 있었다.


“나 호주야. 더는 네가 날 막을 수 없게 하려고. 네가 도우려는 거 아는데… 이젠 내 마음대로 있다가 가고 싶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무력했다. 하루아침에 그는 호주라는 나라로 도망친 것이다.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하지만 그가 도망치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향해 가고 계셨다.

그가 호주 퍼스에 도착한 뒤, 어느 날 공원의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지나갔고, 그는 그저 대마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았지만, 마음 안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그는 기도했다. 진심이었는지, 도전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 지금 누가 와서 나한테 복음을 전하면… 한 번만 더 믿어볼게요.”


희미한 속삭임, 사라지기 직전의 불꽃같은 기도였다. 그리고 몇 분 뒤, 두 명의 청년이 다가왔다. 그들은 YWAM(예수전도단) 소속이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했고,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사랑으로 예수님을 이야기했고, 제자훈련학교(DTS)에 초대했다.


며칠 후 그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어디선가 열린 문 하나가 느껴졌다.


“야… 추천서 좀 써줄래? 목회자 추천서가 필요해…”


“하나님이… 진짜로 내 기도에 응답하신 것 같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놀랐고, 감동했고, 그저… 감사했다.


우리가 도망칠 때도, 스스로 무너지려 할 때도,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쥘 때조차도 —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를 억지로 끌지 않으셨다. 그 벤치 위, 두 낯선 이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그를 찾아오셨다.


그 순간이 모든 것을 지우진 않았다.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앞으로의 싸움도 분명했지만 — 그건 탈출이 아니라, 만남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계시다는 표지였다.

그는 은혜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은혜는 더 빠르게 그를 찾아왔다.




묵상 | 보이지 않는 무게

슬픔은 언제나 크게 울리지 않는다. 때로는 안개처럼 조용히 내려와,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스며든다.

보통 우리는 슬픔을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어떤 슬픔은 아주 천천히 — 하루하루 쌓여가는 무게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봤을 때, 그 슬픔이 우리를 얼마나 바꾸었는지 알게 된다.


그 친구에게도 그랬다. 한 번의 사건이 아니었다. 작은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다. 기운이 달라지고, 말수가 줄고, 세상과의 연결이 조용히 끊겨갔다. 슬픔은, 그리고 우울은,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서로 곁에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그 고요 속에 함께 머물러줄 누군가.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 머문다. 하지만 때때로, 그 안개를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머무는 것이 사랑이고, 위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