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조사에 대하여

by 타마라

인스타 팔로우를 하고 있는 작가님이 있다. 그 작가님 계정에 자주 등장하는 이성이 있는데, 두 분이 무슨 관계인지 너무 알고싶을 때가 있다. 아니,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대체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사진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맹렬하게 행간을 읽으며 단서를 찾고 있는 내가 있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3부작을 좋아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제국의 세계관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는 모두 '그녀'다. 모두가 '그녀'로 지칭되는 세계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그녀'가 남자일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다가도 연애 이야기가 나올 때면 무심결에 연애 당사자들 성별을 궁금해하면서 실마리를 찾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하곤 했다. 나중에 찾아 읽은 스핀오프 단편은 같은 세계관의 다른 나라 사람 입장에서 서술되는데, 본편에 나왔던 주요 인물이 남성이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에는 꽤나 놀랐다.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분명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 왕언니 축에 들게 되었다. 꼰대는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어서, 궁금하더라도 호구조사는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다른 사람의 나이를 묻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나이를 의식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 살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 말한다. 이제 어디 가서 직업도 묻지 않게 되었는데, 실은 내가 직업을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작년 봄, 살사동호회에 가입했다. 닉네임을 쓰는 회사에 다녀서 닉네임을 부르는 건 익숙했는데, 동호회는 처음이라 어떤 얘기를 해도 좋은지 몰라서 오리엔테이션 술자리에서 술만 마시며 방긋방긋 웃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닉네임이 무슨 뜻인지, 어느 동네 사는지, 무슨 춤을 춰 보았는지밖에 없었다.


무슨 춤을 춰 보았냐니. 그러고보니 대학 계절학기에 댄스스포츠 수업을 들었다. 왈츠와 차차를 배웠는데 파트너도 나도 몸치라서 둘 다 엇박자인 채 끝났다. 잊는 것이 차라리 나은 기억이다. 10년쯤 전에 댄스학원 몸치탈출반에서 방송댄스와 힙합댄스를 배워보기도 했다. 몇달간 열심히 다녔지만 워낙 몸치다보니, 춤을 배웠다기보다는 거울에 둘러싸여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춤을 춰봤다고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


다른 춤 배운 적 있으세요? 역으로 물어본다.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단체로 넘어온 사람들도 있고, 힙합댄스를 오래 해 온 사람에 탱고를 배웠던 사람도 있다. 바차타를 추다가 살사로 넘어온 커플도 있다. 춤을 추다 온 사람들은 배워본 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살사와 그전에 배운 춤이 어떻게 바운스가 다른지, 춤출 때 어떤 신발을 신으면 좋은지, 가르방 살사화와 왕자 살사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 춤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할 이야기가 없고, 맥주는 너무 맛이 없다. 간혹 나이를 묻는 질문이 나오다가도, 굳이 답하지 않거나 농담으로 받아치는 통에 이야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2주일이 지나고 뒤풀이 2차를 가게 되었다. 늘 가던 주점에서 술도 마시고 춤도 출 수 있는 라틴바로 걸어가다가, 스윙댄스에서 넘어온 H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왔다. 뭐, 그냥 말하지 뭐. 나는 몇년생이야. 처음으로 솔직하게 나이를 말했다. 어 나랑 동갑이네. 친구다 친구. 반갑다 친구야.


동갑이라고 다 친구인가?하고 조금 삐딱하게 세련된 척 했던 내가 사르르 녹았다. 오 친구네. 와 반갑다. 갑자기 관계가 정리되더니, 한밤중에 테헤란로를 삼삼오오 걸어가던 사람들이 와 오빠네, 어 동생이네, 누나네, 동안이다, 한마디씩 얹으면서 분위기가 풀어진다. 나이를 말했을 뿐인데 이렇게 편안해지다니. 진작 말할걸. 조금 아쉽고, 조금쯤은 어이가 없다. 그동안 밍밍한 맥주를 홀짝이며 방긋방긋거리던 시간이 뭐였나 싶어서.



여전히 어디 가서 나이는 물어보지 않는다. 먼저 나이를 얘기하지도 않지만, 타로 경력이 25년이라고 하면 "언제부터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아서 결국 나이를 말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어라 동안이시네요, 놀라는 상대방의 리액션이 그리워질까봐 조만간 울쎄라를 받아볼까 생각도 해본다. 아니 이게 뭐라고.


구독하는 뉴스레터에 마침 이름을 들어본 가게가 나왔길래 주인장 인터뷰를 쭉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에 사진을 보고 멈칫한다. 이분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사진을 노려보고 있던 내가 촌스럽고 웃기다. 아이고 내가 또 이랬네. 그렇지만 다음에 새롭게 책을 펼칠 때면 또 책날개에 있는 저자 약력을 보면서 나이를 헤아려볼 것을 안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에고고 또 이랬네,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