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렇게 숨이 찬 거지. '
6시 30분, 안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일어나며 든 첫 생각이었다.
물속에 깊이 빠져있는 것처럼 가슴을 무언가가 누르는 것 같은 갑갑함에 숨을 쉬는 것이 불편했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맥박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동시에 긴장과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근육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허탈함을 느끼며 잠이 깼다.
최대한 웅크리고 이불을 덮었다. 불안할 때는 몸의 많은 부분을 바닥에 붙이는 게 도움이 된다.
한동안 웅크리고 있자니 남편이 방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고, 꼬물거리던 아이들이 내 품으로 파고든다.
아무 일도 없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등교를 시키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어제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던진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쁜데 나는 늘 고민한다.
’ 나는 불안한 사람이니까. 나는 예민한 사람이니까 내가 잘못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닐까?‘
처음부터 우리 사이는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냥 참고 살면 언젠가는 그들도 조심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부모님 성에 차지 않는 며느리였다.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니 고쳐오라 했었고, 제대로 돈 버는 척도 안 해본 게 결혼하려 한다고,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냐고 했었다.
아빠 없이 엄마 혼자 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래도 엄마가 사별했으니 널 받아준다며 이혼가정이면 어림도 없었다는 자비 가득한(?) 말도 들었다.
처음 임신이 잘못되었을 때는 "너네 집에 이런 일들이 있었냐? 우리 집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혹시 너네 엄마가 임신 전에 해주신 홍삼때문에 이런일이 생긴것은 아니니?“하며 나와 엄마를 탓했고, 보석 같은 첫 아이가 딸인 것을 알았을 때는 얼른 애 낳고 둘째는 아들을 낳아라고 했었다.
그런 일들이 늘 반복이었다.
우리 부부의 재정상태는 물론 피임 방법까지 세세히 물어보며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고 , 당시 외벌이인 우리 부부는 형제들 앞에서 "셋 중 가장 벌이가 시원찮은,큰형님네 반의 반도 못 버는 집"이라는 말을 잊을 때쯤이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반복해 들어야 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 시어머님은 내 심장에 칼을 꽂듯이 말을 내뱉었다.
"너네 출산 지원금 100만 원 받니? 아니 왜~ 저소득층 한테 출산 지원금 100만 원 준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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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침에 물에 빠진 채로 눈에 뜨곤 하는 사람,
내가 그렇게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이라서 상황을 더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내고살기도 하지 않겠냐며 내가 노력해 보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시부모님과 이런 일이 생기면, 운동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불편한 감정을 털어내 보겠다고 몇 시간을 걸어보기도 했고, 잠을 자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루종일 커튼을 꼭꼭 닫고 억지로 잠을 청해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함부로, 억지로 감정을 꾹꾹 눌러 밟았다. 그렇게 나를 꾹꾹 누르는 사이 나는 툭툭치고 건드려도 괜찮은그들의 감정 쓰레기통, 욕받이가 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그래도 참고 지내면 괜찮아지는 날이 올 줄 알았다.
얼마 전 총선 후의 일이었다.
평소 지지하던 정당의 지지도가 생각 같지 않자 시부모님은 근심걱정이 많으셨다. 어머님은 친히 우리 집까지 오셔서는 정치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종교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가셨다.
얼마 후 시부모님이 지지하던 정당은 총선에서 큰 패배를 하였다. 아마도 마음이 좋으시지 않을 것 같아 한동안 전화를 드리지 않다가 어버이날에 고민 끝에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첫 말씀부터 이유도 없는 가시 돋친 말씀을 하시던 아버님께서는 평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며... 무슨 말인지도 모를 폭언을 불같이 쏟아내셨고 소리를 지르다가 화를 못 참고는 스스로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나 때문에 그들이 지지하던 정당이 총선에서 진 것은 아니지만 짜증과 분노는 오롯이 내몫이었다.
얼마나 멍하니 있었을까...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으니 더 짜증이 났다. 폭언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내가,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그들이 애초에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던 나는,
어느새 그렇게 계속 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 남편은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본인 생각을 굽히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하며 언성을 높이는 아버님께 당분간은 아버님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나에게 앞으로 혹시 전화가 오더라도 받지도 말라고 안부전화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남편에게 난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다 이해한다고, 아니 힘들지만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부모님이 건강히 살아계신 것에 감사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완강하다.
시간이 지나 보니 알겠다며, 사실 이 많은 일들에는 본인의 책임이 큰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너에게 함부로 하지 않게 내가 중간에서 잘했더라면, 그때 내가 제대로 너를 보호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잖아. 네가 괜찮다고 했더라도 내가 안된다고 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귀한 사람이라고 내가 지켰어야지.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이제부턴 제대로 할 거야."
아버님과 우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말을 전했었던, 이 일을 크게 만드는데 일조하셨던 어머님께서는 우리 편을 드는 듯하다가 결국엔 부모에게 숙이지 않는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셨다.
한참을 서로 연락이 없다가 엊그제는 말도 없이 김치 택배가 도착했다. 감사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드렸는데 또 실언을 뱉으신다. "얘 기분 나쁘게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벌써 기분이 나쁘다) 니 둘째가 너 닮아서 키가 작잖니... 어쩌고 저쩌고....."
오늘 아침에 내가 물에 빠진 채로 깨어나게 했던,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고 했던 기분 나빴던 말.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불쾌했고 무례한 말이었으며 함부로 해서 되는 말이 아니다.
나는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야 한다.
그래.
처음부터 우리 사이는 잘못되어 있었다.
그들은 애초에 나를 존중할 생각이 없었고 변할 생각이 없고 변할 능력도 없다. 사람들은 반성과 변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사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단절이 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진짜로 결심했다.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끊어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