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인다. 명절이라고 한다.
시가에 가지 않고 친정으로 향했으니 마음이 좀 더 편하지 않았냐고 누군가 물었다.
'그렇다고 편하기까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엄마는 남동생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엄마는 나보다 남동생을 더 많이 좋아했다.
장남집에 시집와 삼 년 만에 낳은 아들은, 엄마의 신분상승을 만들어준 효자였다.
동그란 눈에 순둥순둥한 성격을 가진 동생은 매사에 의심이 많고 툴툴대던 나와 아주 대조적으로 비교가 되었다.
'아! 세상에 남자아이인데 이렇게 예쁜 얼굴에 성격까지 좋은 아이도 있구나!'
태생적으로 기질이 예민해 조금만 맛이 달라지면 이유식을 손으로 쳐내는 나를 키우던 엄마는, 혼자 우유병을 들고 딩굴딩굴 누워있다가 새근새근 낮잠을 자는 동생이 신기할 정도였다고 했다.
동생은 밖에 다니면 사람들이 이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벤치에 앉아서 과자만 먹는데도 동생보고 막 이쁘다고 했었다. 고모는 명절이면 동생 선물만 사들고 친정에 오곤 했다. 나는 미운오리새끼 같았다.
늘 질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아빠는 안쓰러워했고 엄마는 가진 것이 많은 게 욕심도 많다며 핀잔을 주곤 했다.
그 질투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아빠가 돌아가시자 세상에는 내편이 죄다 사라진 것 같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에 내 탓이 있다고 여겼었고, 미움을 받는 것은 나의 '원죄'의 탓이려니 생각하며 차별을 참았던 나날들,
언젠가는 동생이 내 뺨을 장난처럼 때렸는데 참아야 했고, 논쟁적 상황에 내가 말을 길게 할라치려면 "아~ 시끄러워. 엄마, 누나 입에 양말을 집어넣어~"라는 동생의 말에도 엄마는 재미있다며 박장대소를 했었다.
결혼식을 하던 날 누군가는 저 집 딸은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가면서 뭐가 저리 좋아서 웃냐고, 울지도 않냐고 면박을 줬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줄 알았던 굴레에서 드디어 '탈출'하는 자의 심경을 아냐고 묻고 싶었다.
엄마는 아직도 동생이 안쓰럽다.
물론 나도 동생이 안쓰럽다. 마음이 쓰이고 가끔씩은 아프다. 힘든 일을 하다가 팔목뼈가 부서진 째로 매일 출근을 하는 동생을 생각하면 아리다.
가슴속을 예리한 칼이 심장을 그어버리는 듯 갈비뼈 안쪽이 시큰거려진다.
다 함께 아웃렛으로 향한 어제, 엄마는 많은 옷 가운데 희한하게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꽃무늬 블라우스를 또 골라 입고 따라나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데님 셔츠를 엄마에게 골라주고는 꽃무늬 블라우스보다는 이게 나이가 덜 들 것 같다고 하자 엄마가 마음에 드는지 셔츠를 바로 구매하셨다.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다가 오늘 쇼핑을 만족스러워하던 중 엄마의 꽃무늬 블라우스가 다시 주인공이 되었다.
"이거 그때 네가 괜찮다고 해서 산거잖아!" 꽥 하고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나 아닌데... 그리고 어디 갈 때마다 그 옷만 입잖아. 옷장에 옷이 저렇게 많은데. 굳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옷을 골라 입을 필요가 있냐고 그런 거지. 엄마 여름에도 제평 가서 옷 잔뜩 사 왔잖아. 그 옷 봉지에 담긴 채로 꺼내지도 않고 맨날 똑같은 옷만 입어 왜"
엄마와 내가 티격태격하자 동생이 흘끗 나를 보면서
"사람 좀 적당히 갈궈라..."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어... 내가 누난데...'갈궈라'라니'
기분이 너무 나빠 뭐라 말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또한 학습된 무기력인걸까.
먹던 맥주도 싱크대 물에 흘려버리곤 가방에 있던 뜨개질 거리를 꺼내 입을 다물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엄마의 옆모습이 보인다.
우리 엄마는 동생을 좋아한다.
내 동생은 엄마가 본인을 더 아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생은 늘 엄마를 지키려고 한다. 심지어 나로부터도.
언젠가 탈출에 성공한 이 집에 나는 심심하거나 명절이면 드나들곤 한다.
물론 이곳에서 나는 아직 원죄를 가진 의심 많은 투덜이이기에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하곤 한다.
다행인 것은 나는 그때 이곳을 탈출하였기에 갈 곳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번 추석은 친정으로 가니 마음이 편하시겠어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친정이라고 딱히 편한 것도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