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김에
오늘 볼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친정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내가 뒤늦게 시작한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걱정되신 모양이다.
회사를 다닐 땐 잘 다니고 있느냐,
일을 그만두면 앞으로 뭘 해 먹고살 거냐,
새로 시작한 일은 가능성 있느냐.
아버지는 늘 묻는다.
아버지 눈엔 내가 항상 걱정거리다.
그냥 회사에 진득하니 다녀주면 좋을 텐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주면 좋을 텐데.
그 어디에도 그게 정답이라고 쓰여 있진 않지만
아버지에게는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
그저 “네가 행복하면 됐다”는 말
그 한마디면 충분할 텐데.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실패한 사람처럼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행복만 중요하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데
누가 대신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제 마흔 줄,
행복이 전부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부터 무책임하다고 탓할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감기 기운에 몸은 나른하고 기운이 없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했던가
빗물에 조금이라도 씻겨 내려가길 바라본다.
Pixaba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59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