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걱정씨에게 전할 말이 있어요
김걱정씨는 눈뜨면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를 하고 부리나케 운동복을 챙겨 입습니다. 부랴부랴 텀블러에 커피를 타 가방에 넣고 몸을 숙이지 않아도 신을 수 있는 크록스를 신고 힘차게 달려 나갑니다. 헬스장까지 15분. 빨리 걷든 천천히 걷든 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걸 모른 채 오늘도 총총걸음으로 건물 앞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떠 있는 1을 확인하고 달려가죠. 두 발이 엘리베이터 안에 놓일 때 비로소 안심합니다.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하체 운동 하는 날이네요. 아령을 들고 고관절에 신경 쓰면서 햄스트링 늘리는 데 집중합니다. 그런데 정말 집중하는 게 맞을까요? 왜 그녀의 시선은 거울을 통해 스미스 머신을 보고 있을까요. 아직 한 세트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기구를 차지할까 봐 불안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4세트가 끝날 때까지 스미스 머신에 사람이 없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과 텀블러를 기구 옆에 두고 1분간 휴식을 취합니다. 계획했던 모든 운동을 끝내고 유산소 운동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천국의 계단보다 러닝머신을 좋아합니다. 걷는 것보다 달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자리가 비어있길 바라며 유산소 코너로 향합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네요. 창가에 딱 한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그녀는 신나게 러닝화로 갈아 신고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도착하면 할 일이 많습니다. 밥을 먹고 치운 뒤 샤워를 하고 머리도 말려야 하죠. 머리가 길어서 잘 마르지 않아 팔이 아파옵니다. 여름이면 대충 말려버릴 텐데 겨울이니 감기는 조심해야죠. 쉬어가면서 끝까지 잘 말려줍니다. 그리고 곧장 거실 책상에 앉아 오늘 할 일을 정리합니다. 할 일은 늘 많은데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김걱정씨는 더 조바심을 느끼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 해결해버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체력에는 한계가 있지요. 더군다나 그녀의 손은 빠르지 않습니다. 멀티플레이어는 절대 아니죠. 아주 단순하게 살던 그녀에게 지금은 굉장히 버거운 날들의 연속일 겁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내려놓지 못하네요. 왜 그럴까요.
혹시 불안한 건 아닐까요. 불안은 곧 두려움입니다. 두려우니까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겠지요. 지금 포기한 일이 더 중요한 일이면 어쩌나 싶겠지요.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요.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중이겠지요. 보답하고 나눠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렇겠지요. 그래서 늘 말이 앞서고 뒤에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당도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불편합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안에 압도되는 걸 그녀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있네요.
책에서 답을 찾는다던 그녀가 자기 계발서만 읽더니 착각했나 봅니다. 그 책에서 권하는 것들을 다 해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럴 땐 문학이 약이지요. 후루룩 말아 읽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문학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요. 한 문장 한 문단을 느껴가며 읽어야지요. 이 책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내게 무슨 도움을 줄까 계산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들 바쁜 일상에 지칠 때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데요. 김걱정씨는 실제 여행보다 마음의 여행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책을 통한 여행을 추천합니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저자와 함께 15일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다
-앙드레 지드
읽기 방식은 삶의 방식이다.
후딱후딱 읽어 치우는 방식은
생각이나 삶의 방식까지 그런 식으로 만들며,
천천히 읽는 방식은,
삶의 속도를 늦추며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고 차분히 살게 한다.
-야마무라 오사무
지금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있는 김걱정씨. 저와 함께 소설 한 권 읽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