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
박준의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읽고.
처음, 이 시집을 읽었을 때는 씁쓸함이, 두 번째는 후회와 그리움이, 세 번째는 화자의 아픔이 느껴졌다. 우리는 가끔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럴 때 침 한번 “퉤” 뱉고 뒤돌아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함께한 시간과 추억마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애써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나와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거라고 말이다. 이 시집의 화자가 꼭 그런 나처럼 느껴졌다.
후회에도 순서가 있어서
한번 두번 세번 다시 한번 두번 세번
-「앞으로 나란히」 중에서
나는 오래도록 믿어왔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두 배는 더 오랫동안 그 일로 힘들어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후회’였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아예 그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을 거라고. 끝도 없이 후회를 만들어냈다. 처음엔 상대를 원망하고, 그 다음엔 상황을 원망하고, 마지막엔 나를 원망했다. 후회에도, 순서가 있었다.
원망은 매번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귀로」 중에서
그 사람은 늘 “내가 바라던 대답”을 해줬다. 나는 안심했고 만족했다. 나는 늘 답을 정해놓고 질문했다. 나는 그에게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향하던 원망은 결국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바보 같았던 나에게로.
보잘것없는 상대에게
한번 옮겨 간 마음은
어지간해서 다시 거두어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로 배우고 갑니다
살면서 나를 아껴준
몇몇 이들도 한번쯤
이곳을 다녀간 모양입니다
-「마름」 중에서
그런데도 쉽게 잊지 못했다. “보잘것없는 상대”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한번 옮겨 간 마음은 다시 거두어 들이기 어렵다”라는 걸 직접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이라는 게 참 무섭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나를 아껴준 몇몇 이들도” 보잘것없는 나를 쉽게 버리지 못해 아껴준 건 아니었을까. 그들이 새삼 고마워진다.
상처받은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모른다는 걸. 결국 산다는 건 받고 내어주는 관계 속에서 인연을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Javid Hashimov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828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