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5층이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아파트 앞 놀이터가 훤히 다 보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5층이라 조금만 목소리 톤을 높이면 대화도 가능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집에서 지켜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내가 어릴 적 골목에서 놀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그렇게 자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리 되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도, 등교하는 아이도
나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곤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늘 나나 아빠와 함께 학교에 가다가, 어느날부턴가 혼자 혹은 친구와 만나 간다고 했다. 나는 괜히 불안해졌지만 아이에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놀이터 그네 앞에서, 혹은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친구를 만난 딸아이는 아침부터 조잘조잘 떠들며
학교로 향했다. 멀어져 가는 아이에게 “잘 다녀와~ 사랑해~” 하고 크게 외치면,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갔다.
그렇게 계속 소리쳐 인사하다가, 어느덧 2학년이 된 아이가 다른 친구들 앞에서 민망해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등교하던 아이가, 먼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뒤돌아본 것이다.
사실 그동안 어떤 날은 동생 등원 준비로 못 본 적도 있고, 내가 바빠서 아예 못 본 날도 있었는데 아이는
그때도 뒤돌아봤을까.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열심히 내다보고, 더 크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예감과 기대는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 혼자 학교에 가보겠다고 했던 날도 잊을 수 없다. 친구랑 만나는 것도 아니고, 혼자 간다니.
첫째라서 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몰래 뒤에서 아이를 쫓아갔고, 결국 들켰다.
아이는 쫓아오는 게 싫다고 했다.
사실, 아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수시로 흉측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 험한 세상을 못 믿어서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되겠다 싶어 그날은 필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제법 큰 공원을 지나야 했는데, 전철역이 있는 그 공원에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어른들이 출근길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숨어있는데, 아이가 가다 말고 두리번거리더니 공원 한복판에
멈춰 서서 “뿌엥—” 하고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 왜 그랬냐고 물으니,
내심 엄마가 쫓아오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없어서, 갑자기 너무 무서웠단다. 낯선 어른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와중에 혼자 남겨져 너무 무서웠다는 말에 나도 눈물이 났다.
지금도 종종, 그때의 아이를 떠올리면 목구멍 저 밑이 뜨거워진다.
1년도 더 지나 이제는 혼자서도 잘 가는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컸지? 참 기특하다!" 싶다가도, 문득 그때가 그리워진다. 엄마의 품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는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울컥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매일 창가에 서서 아이의 등을 보며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8살, 15살, 20살, 30살..
먼 훗날, 내 곁에서 완전히 독립해 나갈 그때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