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와 펜을 세팅해두는 사람
우리 집에는 ‘쪽지쟁이’가 셋 있다.
나와 열 살 첫째 딸, 그리고 연애 시절 내가 단련시킨 남편이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둘째만 예외다.
우리는 때마다 편지쓰는 것은 물론,
수시로 포스트잇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둔다.
달달한 말이든, 슬쩍하는 부탁이든, 쑥스러운 사과든.
사실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연애 때부터 내가 열심히 훈련시킨 덕분이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우리 디제이와의 2년 방송 막방 날,
남편은 나뿐 아니라 팀 모두에게 손편지와 꽃다발을 준비하는
아주 멋진 서프라이즈를 선보였다.
그때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이게 다 여보의 조정 덕분이지. (낄낄대며) 사람들은 모르잖아. 여보가 평소에
편지지 종류별로 싹 꺼내두고 볼펜까지 세팅해서, 편지 꼭 쓰라고 하는거. “
맞다. 나는 늘 말했다. 선물은 안 해도 되지만, 손편지는 꼭 쓰라고.
또한 선물이 있더라도 그것만 주면 안 되고, 편지를 함께 줘야 한다고.
그게 우리만의 룰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남편에겐 꽤 피곤한 주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낯선 교실에서 애쓰고 있을 아이에게
나는 거의 매일 작은 쪽지를 넣어 보냈다.
아이는 그것을 기다렸고, 무척 좋아했다.
2학년이 되고, 한동안은 쓰지 못했다.
가끔씩 써주면 참 좋아라했지만, 내 일이 바빠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2학기 가을쯤, 며칠 다시 써주었더니 아이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본다며
“엄마, 내일도 꼭 써줘.”라고 하더라.
또 어느 날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엄마. 선생님이 그게 뭐냐고 해서, 엄마가 써주신 거라고 했더니
씩 웃으셨어. 머리도 쓰다듬어주셨어.”
우리 딸은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나와의 비밀 같은 연결이 좋았던 걸까.
아무튼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자란 덕인지,
종종 늦은 밤 퇴근한 나와 남편에게 쪽지를 건넨다.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아빠가 아침에 꼭 안아주면 좋겠어.”
오늘도 식탁 위엔 작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며칠 야근하느라 못 본 아빠가 일찍 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다.
다정함은 그렇게 우리 안에 전염되었고,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온다.
사랑은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사소한 쪽지 한 장에 더 가까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