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퇴사하는 날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은 회식이었다.
모두가 설 연휴 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유독 이번 목요일은 더욱 바쁜 날이었다. 거의 모든 팀원들이 분주하게 외부 미팅을 준비하고 나가기도 하였고, 우리는 트레이닝이다 하여 몇몇 내부 미팅들도 스케줄에 잡혀 있었다. 미팅 두 번이면 하루는 그야말로 순삭.
오늘은 특별히 한국을 방문한 일본, 싱가포르 오피스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저녁 회식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이 자리는 새로 오신 매니저님을 반갑게 환영하는 자리이면서, 나의 송별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모든 과정들이(집을 정리하고, 치과 치료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회사와의 각종 서류 정리, 현재 회사와의 마무리 등) 복잡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정에 치이느라 '내가 정말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서류처리만큼 내 마음과 일이 깔끔히 정리되지 않아 송별회지만 여느 때와 같이 먹고 노는 자리로 생각하고 나갔다.
1차를 마무리할 무렵, 그동안 누구나 떠날 때마다 그랬듯이 고생했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는 의미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이 순간 이 전까지 붕 떠 있던 감정은 한순간에 응축되었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도 붉어졌다.
지금까지 몇 군데의 회사를 떠나왔지만, 이 곳은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을 했던 첫 회사이면서 계약 만료가 아닌 내 발로 떠나게 되는 첫 직장이었다.(물론 첫 인턴이 이러했지만, 지금은 환송받고 떠난 첫 회사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여러 가지를 더 덧붙일 수 있겠지만 '처음'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 나는 내 발로 이 곳을 떠나고 있구나는 의식을 이제야 하기 시작하면서 괜히 감정이 북받쳤다. 그러나 어떻게든 다 연결되어 있기에 나는 "또 만나요"라는 인사로 감정과 자리를 정리했다.
떠나가라 소리치고, 몸부림쳤던 노래방까지 다 같이 클리어하며 마지막 회식은 마무리되었다.
싱숭생숭 금요일
다음 날,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확인하고 각각 인수인계해야 할 부분들을 전달한 뒤, 인사와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얼마 있지 못해 떠나게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 응원까지 덧붙여주는 분들이 많으셨다. 그리고 채 떨쳐버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겨놓고 작은 상자 하나만을 들고 회사를 나왔다. 나의 공식적인 첫 직장은 여기서 매듭이 지어졌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돌아온 금요일의 오후는 싱숭생숭했다.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이르게 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시작하며 다짐했던 열정과 설렘들이 향수처럼 다시 스쳐 지나갔다. 몇 개월 동안 옆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동료 분들의 조언을 다시금 곱씹어 보기도 하고, 무심코 던져졌지만 내겐 큰 무게감으로 작용했었던 그 말들을 다시 주워 담으면서 이 싱숭생숭함을 달래보고자 했다. 툭 떨어져 나온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얻은 것들을 나는 꼭 간직하고자 한다.
어떠한 의식을 치르듯이 나는 마지막 빨랫감들을 정리해 빨래방으로 갔다.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그전에 빨래를 정리하면 한결 내 마음도 정돈될 거 같았다. 빨래 후, 10년 지기 대학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에서 만나 또 한 번 조촐한 송별회를 하며 금요일을 보냈다.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차곡차곡 짐도 정리해서 보냈고, 어느 정도 서류 정리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 될 만한 곳으로 향한다. 아직은 새로운 설렘보다 한국에서의 것들을 정리하는 데에 치중하다 보니 그 감흥을 표현하기엔 조금 이르다. 이십 대의 나는 매해 새로운 곳에서 흔적을 남겨왔다. 1년이라는 텀이 조금은 빠르지 싶어 삼십 대의 나는 더 넓은 보폭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출발부터 큰 점프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마라톤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또 도전을 택했고, 내 가치를 더 끌어올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찾으러 간다. 올해는 싱가포르에서 더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