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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규 Feb 17. 2019

링로드 위에서의 새해

아이슬란드에서 시작한 2019년

이번 주말은 이틀 내내 늦잠이다. 낮에 졸린 눈도 참고, 저녁엔 운동하며 몸을 고단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기상 시간만 더 늦어질 뿐이다. 왕복 35시간가량의 비행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1900km의 운전이 주었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인가. 이참에 여행의 여운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이번 주말 할 일로 삼았다.





2019년을 시작하는


작년 8월 여름휴가로 떠난 코타키나발루에서 우린 올해 설 연휴를 아이슬란드에서 보내기로 정했다. 가장 따뜻한 여름날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눈으로 뒤덮인 광활한 아이슬란드에서의 2019년 시작을 기대했다.(코타키나발루의 석양도 꽤 멋지고 감동적이다.)


어떤 여행을 할까 계획을 짜면서 우린 너무도 당연하게 링로드 완주를 결정했다. 겨울철 위험하고, 또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쉽사리 정해진 일정 내에 마무리 짓기 어려운 코스임에도 우린 링로드를 끝내고 싶었다.(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하루만 아니 1시간만 늦었더라도 스톰을 동반한 눈보라와 길 차단으로 인해 일정이 꼬일 수 있는 상황을 거의 매일 겪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목표를 하나 세우고 달성한다는 의미는 에너지를 일깨우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또한 링로드 끝 블루 라군에서 온천욕으로 뿌듯하고, 노곤하게 여행을 마무리 지으며 링로드 완주가 주는 부가적인 효용을 얻기도 했고.

아이슬란드 링로드로 불리는 1번 국도


비현실적인 자연과 조우한 경험들은 단연 이번 여행 가장 인상 깊은 순간들이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맞는지 영화 속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보고, 담았다.(실제로 블록버스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활용된 지역들도 있다.)


블랙 샌드와 어울렸던 다이아몬드 비치와 웅장한 폭포, 굴포스
깨진 빙하가 흘러 다니는 요쿨살론


인터스텔라 얼음 행성의 배경이 되었던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은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장소 중 하나였다. 여행 몇 주전 스카프타펠 트래킹 투어를 신청하였으나 당혹스럽게도 스톰으로 전일 취소되었다. 이처럼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기상 변화로 인해 원하는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운 게 겨울철 아이슬란드 여행의 특징이기도 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여행사에서 추천한 Crystal cave 투어로 변경하여 예상하지 않았던 재미있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자그마한 동굴이지만 신기하게 굳은 동굴 벽 얼음들과 재미있는 사진들을 여럿 찍을 수 있었다.

Crystal cave를 나서면서


대부분의 관광지들은 주로 아이슬란드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레이캬비크 근처 골든 서클로 알려진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포스(폭포), 스카프타펠과 같이 트래킹이 가능한 국립공원, 화산재로 형성된 블랙 샌드로 덮힌 해변들,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피오르드 지형 등 남쪽, 동쪽에 주로 유명한 곳들이 위치해 있다. 우리는 링로드를 타고 북부 지역으로 올라가면서 찾아다녀야할 장소들이 많진 않았지만 남쪽보다 더 가깝게 northern lights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커졌다.


북쪽의 밤하늘은 별도 더욱 선명하고 많아 별자리를 찾아보면서 northern lights를 기다리곤 했다. 흐릿하게 밤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그림자같은 것이 어느새 움직이는 빛으로 변하고, 카메라로 담아 보면 더욱 선명한 northern lights로 변하곤 했다.


북부 지역 미바튼에서 만난 Northern lights


보통의 우리 도시인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먼 곳을 바라볼 일이 많지 않다. 내 자리에 있는 랩탑과 모니터가, 도시의 빼곡한 건물들이 우리의 시야를 집중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집중이 길어지면 피곤하다. 반복적이고 동일한 환경 또한 피로를 더해준다. 지난 며칠간 이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고, 밤에는 하늘에 수 놓인 별들과 푸르스름한 빛을 바라보니 장시간 운전으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상쾌하고, 개운하게 2019년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링로드를 달리며


링로드를 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덕분에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함께 듣기도 하고, 추천하고 싶은 팟캐스트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차 안에서 평소에 갖지 못한 시간들을 많이 가졌다. 서로 갖고 있는 고민들은 잠시 내려놓고 여행에만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시간을 더 온전하게 만들 수 있었다. 같이 즐기고, 대화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한편, 출발지와 종착지가 같지만 1900km의 먼길을 돌아오는 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브런치는 나만의 링로드를 달리며 느끼는 것과 의미 있는 순간들을 충분히 소화하며 배설하는 공간이다. 달리다 보면 달리는 일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Vik라는 지역을 통과할 때 스톰으로 도로가 통제될 상황이라 강한 바람 속에 빠르고 신중하게 운전에 집중했고, 동부에서 북부로 올라갈 때에도 눈앞에 눈보라가 시야를 완전히 가려 중간 행선지들은 포기하고 북부로 계속 달렸다. 타이밍도 중요하여 이때 달리지 않았다면 길이 차단되어 여행 일정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을 거다.


이때처럼 지금 나는 달리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기인 듯하다. 내가 하는 일의 환경과 성격이 계속 변해가면서 적응하고 더 발전하도록 노력 중이고, 소화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겪어보고싶은 시기다. 그러다 보니 어느 시점에 쉼표를 찍어야 할지 몰라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충분히 정리해보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을 시작했던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서 주는 오늘의 여운처럼, 나의 작은 링로드가 끝나는 어느 시점에 지금의 나를 충분히 곱씹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에 감동하고, 또 열심히 달리다 보면 끝나고 나서 더욱 진한 여운과 함께 정리할 거리들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2019년은 그런 의미에서 더 힘차게 엑셀을 밟을 수 있는 시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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