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부터 서른이 된 이 시점까지 딱 10번 이사를 했다. 이쯤 되면 상황이 무척 안타깝다거나 아니면 지독한 성격 탓에 쉽사리 정착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행운인지 불행인지 매년 다른 '기회'들로 인해 이동을 하고 있다.(그동안 짐을 싸는 속도는 부쩍 빨라졌으나 아직 이사에 특별한 팁은 없다.)
스무 살, 재수 생활을 위해 대치동 어느 골목에 위치한 고시원을 시작으로 지금 싱가포르 중심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수영장이 딸린 콘도까지 나름대로 의미 있고, 다양한 곳들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위치뿐만 아니라 집의 형태, 주거의 방식, 국가 등등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 주거 공간은 큰 추억거리를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서울에 집을 구할 때마다 주로 아버지 차를 이용해 이사를 했었다. 부모님은 이삿짐을 싸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셨던지 꼭 차곡차곡 신문지로 싼 식기들과 마트에서 산 알록달록한 이불들을 챙겨 이사를 도와주셨다. 첫 자취방이자 첫 서울에 입성했던 곳은 월세 32만 원짜리(A4용지만한 창문으로 2만 원 더 비쌌다.) 대치동 고시원이었다. 그저 대학이라는 목표만 있었던 스무 살의 나는 사는 공간에 관해서 아무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었기에(아니 사치라는 생각에) 나 한 명 누워있기도 버거운 공간에 바퀴벌레가 천장에서 떨어지고, 주방에선 쥐가 돌아다니는 그런 환경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대학이라는 낭만과 꿈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미래에 양보할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통학했던 첫 학기를 제외하고 줄곧 자취를 했다. 자취방을 알아볼 때마다 예쁜 여자 친구가 생겨 등교 때마다 찾아온다던지 밤새도록 친구들과 집에서 먹고 놀거나 지방에서 놀러 오는 친구들이 하룻밤 묵고 가는 일들을 꿈꾸며 적합한 장소를 골라보곤 했다. 관계 중심이었던 대학 생활에서 자취방이라는 공간은 나만을 위한 장소라기보다 나와 소통하는 혹은 하고 싶은 이들을 이어주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누군가 놀러 온다고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고, 늦은 시간까지 무리들과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집으로 가자!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오죽했으면 몇몇 자취방은(네 군데 정도 옮겨 다녔었는데) 옆집 혹은 아랫집에 동기가 들어 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내겐 낭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대학 시절 자취방들은 기능적으로 제 역할을 다해줬다.
자취방 생활보다 조금 더 밀착해서 보냈던 도미토리 생활은 타지 생활에 큰 활력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스웨덴 웁살라의 플록스타라는 기숙사에서는 오랜 전통으로 밤 10시면 창문 밖으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짙은 특색이 있었던 이 곳은 다양한 테마로 파티가 열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더불어 삼삼오오 같이 밥을 해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던 곳이었다. 때론 기타를 들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주변 친구들은 맥주병을 가지고 그것들에 귀를 기울여주기도 했다. 이 작은 사회에서 일어났던 다이내믹들은 다소 냉소적인 스웨덴 문화와 다르게 열정적이었고 미숙했지만 지평선에 드리운 아름다웠던 스웨덴의 노을과 같이 따뜻했다.
더 왁자지껄했던 공간은 샌디에고의 기숙형 숙소에서 지냈을 때였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친구들과 매일 저녁 모여서 각자 씻기, 썰기, 조리하기, 설거지하기 등 역할을 나눠서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마시며 매일 밤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갔다. 청춘 드라마에 나올법한 생활을 몇 개월간 하면서 이런 시간이 내 삶의 어느 한 페이지에 남겨질 거란 생각에 너무 감사했고, 추억하기에 너무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같이 생활하며 생활 속에서 더 배려하는 법도 더불어 체득해 나갔다. 이 곳 생활은 내 방이라는 공간 자체의 의미보다 함께 떠들던 분위기와 참 날이 좋던 샌디에고라는 장소가 어우러저 함께 즐기면서 사는 ‘생활’에 대해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는 꼭 다시 이런 생활을 다시 만들고 싶다.
싱가포르로 넘어오면서 4개월 정도 도심에 고급 레지던스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것을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좋은 위치에 좋은 공간이 주어졌다. 조금씩 수영을 해보며 이 더운 나라에서 몸을 식힐 수 있는 방법도 찾아가고, 매일 갈아주는 깔끔한 침구들로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생활을 하며 싱가포르에서 구할 집은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몇 번 타지 생활을 해봤지만, 이 곳 싱가포르는 일을 하러 온 곳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유독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남아 생활 공간은 더욱 편안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알아보면서 나는 잠자리를 편하게 꾸릴 수 있고, 먼 곳을 내다 볼 수 있으며, 가볍게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주변에 운동 시설이 있는 환경을 찾아보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집을 찾다 보니 그런 요소들이 내게 쉼을 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집에 대해 생각했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내가 충전될 수 있는 곳으로 오늘의 집을 선택했다. 비싼 싱가포르 렌트비에 여간 부담이 되긴 해도 낯선 이 곳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이 시간, 가져온 이삿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무드등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집은 잘 구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