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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Aug 07. 2024

재즈는 나의 친구

음악이 연결해 주는 것들

  아침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매장 문을 열기 전 고요했던 매장 안에 음악을 틀기 시작한다.  뮤직 스트리밍 스포티파이 덕분에 다양한 장르를 골라 선택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하루종일 수많은 손님들을 응대하며 견뎌야 하는 공간에서 듣는 음악마저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면 그것처럼 곤욕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장르가 나눠진다. 매장 오픈 시간인 9시부터 10시 30분 정도까지는 손님이 많지 않은 가장 한가한 때이기도 하고 차분한 아침 시간이기 때문에 조용한 스타일의 재즈를 주로 듣는다. 빌 에반스나 키스자렛 같은 피아노 위주의 트리오 연주가 듣기 편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에 적당하다. 비가 오는 아침이라면 그야말로 블랙커피가 절로 생각나는 기가 막힌 배경음악이다.

티타임에 가까이 다가올 때쯤  루이 암스트롱이나 넷킹콜 같은 올드 재즈 뮤지션들로 바꾼다. 나이 지긋한 노인분들이 대부분인 시간대이니 맞춤형 고객 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1920년대부터 50년대의 재즈는 그들이 오랜 시간 지나온 삶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잠시나마 추억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즐기게 해 준다.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시거나 음악 감상을 하느라 정작 물건을 골라 사야 하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서성이기도 한다. 물건을 파는 가게인지 음악 감상실인지 헷갈릴 만큼 본인들도 음악을 듣느라 계속 머물게 된다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렇게 티타임도 지나고 런치 타임도 지난 후에는 몸이 나른해지기 마련, 이때엔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올드팝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신나는 음악들로 귀가 지쳐가는 낮 시간대가 지나고 나면 늦은 오후 4시부터 마감 때까지 아주 시끄럽지도 않으면서 너무 처지지 않는 적당한 템포와 리듬의 일렉트릭 재즈 연주곡으로 마무리한다.

 어느 단골 할아버지는 언제나 오전에 방문하시는데 올 때마다 늘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왕년에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했다며 소싯적 화려했던 시절의 얘기를 하느라 카운터 앞에서 떠나실 줄 모른다. 또 어느 단골 할머니는 루이 암스트롱 노래만 흘러나오면 뉴올리언스 재즈를 너무 좋아한다며 얘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없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척하며 맞장구를 쳐드린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백점 만점에 백점도 모자란 특급 서비스다.

 오늘은 처음 등장하신 할머니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적어도 70, 80대로 보이는 외모인데도 코 한쪽에는 가느다란 링 피어싱을 하셨고 히피스타일의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예사롭지 않은 분이었다. 그것은 전혀 나이에 맞지 않은 유치함으로 보이거나 천박스럽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인생이 묻어나는 멋스러움이 가득했다. 개성 만점인 노인은 나에게 재즈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베시 스미스를 아느냐며 재차 묻는다. 서로 재즈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오고 가며 세대를 초월해 음악 얘기로 즐거운 시간을 잠시 나눴다. 그러다 물건을 계산하시고 결정타를 한방 날리고 유유히 나가셨다. 본인의 아버지가 꽤나 유명한 드러머로 재즈 뮤지션이었다며.

외모와 말투, 대화 소재까지 예술가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던 촉이 왜였는지 밝혀지던 순간이었다. 피는 절대 속일 수가 없다. 어느 집 얘기도 할 것 없이, 우리 집 이야기처럼.

 5일 근무 중 일주일에 한 번은 다른 매장에 가서 일을 한다. 주 업무는 재고 파악과 주문이다. 그곳은 주 고객이 시니어인 매장과는 달리 다민족들과 연령대도 다양하다. 당연히 음악 또한 맞춤 서비스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한동안은 존 메이어에 흠뻑 빠져 하루종일 틀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오전 중에 어떤 젊은 유럽계통의 두 커플이 들어왔다. 한참을 쇼핑을 하고 나서 물건들 계산을 마칠 때쯤 나에게 묻는다. 존 메이어 좋아하냐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노래 전부를 다 좋아한다고 대답을 하고 나니 친구 한 명이 존 메이어 광팬인데 영국에 있을 때 바로 코 앞에서 존 메이어를 만난 적이 있다며 엄청 좋아했다는 아주 사적인 친구의 이야기를 한다.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해피 투게더다.

위대한 음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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