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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Aug 08. 2024

그랬었군요…

기억속 양초 할머니

  주기적으로 오시는 할머니 손님 중에 언제나 양초만 사시는 분이 있다. 항상 말끔하게 차려입은 단정하신 모습에 대화톤만 들어도 평소의 성품이 그려지는 얌전하신 분이다. 키와 체구가 작으신 아담한 외형을 지니셨다. 가게에 오실 때마다 키가 크고 건장한 중년쯤 되어보이는 남자와 함께 오신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진 않지만 모든 몸의 기능들이 노쇠해 움직이시는데 힘겨워보인다. 늘 많은 양의 양초들을 한꺼번에 구입하셔서 할머니가 손수 들고 가시기에는 꽤나 무겁고 힘들어 그 남자는 물건을 대신 들어드리는 일을 도맡아 한다. 항상 곁에 있는 그 남자는 언뜻 보기에 아들인가 싶기도 한데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피부색이며 얼굴 생김새로봐서는 전혀 그럴리 없을 거라 단정짓게 된다. 서로 모자지간인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둘의 친밀스러운 대화나 행동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처럼 느껴질만큼 다정스럽다.


  주로 단골손님들은 그들만의 루틴대로 늘 비슷한 시각에 들르곤 한다. 그렇다고  언제 오고 가는지 또 언제 왔는지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굳이 기억해낼 필요까진 없지만 간혹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방문하지 않은 손님들은  느슨한 시간대에 잠시 있다보면 가끔씩 궁금해지기도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건지, 어디 아파서 나오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스쳐지나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전에 오셨던 꽤 많은 시니어 손님들은 이젠 더이상 보이질 않는다.

 

 몇일전 매장일로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던 때 그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가 인사를 건냈다.  그 옆에는 늘 붙어다니시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져 안부를 물어볼 찰나 계산대에 물건들을 내려놓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 늘 나와 같이 오셔서 많은 양초를 사시던 할머니 기억하죠?”

“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언제나 당신은 그 분과 함께 오셨잖아요.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세요?“

” 그 할머님, 몇주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

…………


순간 커다란 돌이 가슴에 덜컹 내려앉았다. 계산하느라 재빠르게 움직이던 손은 그대로 굳어버려 움직이지 못했고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떨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무슨 연유였는지 물었다.

멀쩡하시던 할머니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끝내 세상과 이별하셨다고 했다. 그 남자는 얘기하는 내내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다. 혹시 아드님이시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라며 몇년전부터 옆에서 도와드리는 관계라고 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작은 양초들을 한꺼번에 스무개 이상씩 구입을 하셨는데 그 때마다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많은 양의 초를 사시는지 늘 궁금했다. 혹시 교회나 성당에서 사용하시려고 하시나 지레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 궁금증을 이제서야 그 남자에게 물었다.


“ 아, 그 양초들이요? 그건 모두 할머니의 남편분을 위한 것이었어요. 남편분이 거실에 양초 켜놓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거든요. ”

………..


 가슴 먹먹해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에 한참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오고 가는 손님들은 그저 시야에서 움직이는 사물에 불과했다.


 삶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외관이든, 어디에 머물러있든,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 의미없는 오늘이 없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곁에 있어주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위안과 행복이다.

한손에 들기도 버거웠던 많은 양초를 가득가득 들고 집안에 들어가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남편을 위해 따뜻한 온기를 피워내던 그런, 따뜻하고 위대한 사랑처럼.


할아버지는 여전히 촛불을 켜고 계실까.


가난한 구두장이 부부를 위해 밤새 신발을 만들어놓고 사라진 요정들처럼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사이 집안에 들어와 방에, 거실에, 부엌에, 노란빛의 초들을 켜놓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를 가득가득 채워놓을 것만 같다. 외롭지말라고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Photo by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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