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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Aug 07. 2024

치명적인 실수

자만은 금물

  캐슬 힐 정상 겨울 등반의 계획은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으로 잠시 뒤로 미뤄졌고, 겨울 여행 겸 큰 무리 없는 트레킹 코스를 다녀오기로 하고 마운트 쿡으로 향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첫째 날 실리 탄 트랙(Sealy Tarns Track)과 키아 포인트 트랙(Kea Point Track), 둘째 날 후커 밸리 트랙(Hooker Valley Track)의 스케줄을 잡고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마운트 쿡에 도착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 불리는 실리 탄 트랙은 하마터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계단’이 될 뻔한 아찔한 트랙이었다. 겨울 산행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던 것일까, 캐슬 힐과는 비교도 안 되는 코스라는 것 때문에 만만하게 생각한 탓이었는지 크램폰을 챙기지 않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역시나 산은 절대 자만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2200개의 어마어마한 계단은 온통 얼음 덩어리로 꽉 채워져 있었다. 좁고 가파른,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계단에서 한순간도 절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공포의 얼음 계단을 오르고 올라 가까스로 정상 가까이에 다다랐다. 포인트 뷰에서 잠시 멈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설산과 뮬러 호수에 떠있는 빙하들에 감격했다. 지옥으로 가는 계단은 분명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산 앞에서는 욕심과 자만은 금물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자만심이 아닌 겸손함을 겸비한 자신감을 장착하고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 조심스럽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겁을 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터, 계속해서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의 의지를 불태워야 했다.


 

 

 무사히 도착했고, 곧바로 키아 트랙으로 향했다. 평지로 쉬운 코스지만 겨울 산행에서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길이다. 그늘진 곳곳은 온통 얼음이 깔려있는 빙판길이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포인트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겨울 원더랜드 속에 파묻혔다. 배낭에 넣어 가져온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비현실의 또 다른 세상 속에서 한참을 푹 빠져 있었다.


비록 경솔한 판단에 아찔한 순간을 맞이할 뻔했으나, 다행히 모든 것은 완벽했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묘미와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걷는 산행은 매력적인 아웃도어이다. 아쉬움을 남긴 실리 탄 트랙은 12월 여름에 오르기로 한 뮬러 헛(Mueller Hut) 등반 코스에 다시 거쳐가야 할 코스다. 다행히 그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위안을 삼는다.




photo by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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