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부대찌개

by 이의준평택


선규와 나는 학교 운동장 옆 언덕에 앉아 있었다. 운동장 너머로는 새로 신작로가 나고 있었고, 동네 아저씨들이 성환 천에서 퍼 온 자갈을 길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햇살이 따가운 오후였다. 운동장 느티나무에서는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댔다.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는 선규와 나는, 오늘도 미군 짚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짚차가 지나가면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헬로우, 짭짭!”을 외쳤다. 그러다가 마음씨 좋은 군인 아저씨를 만나면 과자나 통조림이 날아왔다. 우리는 그걸 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어갔다.

그날도 별 기대 없이 짚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길을 닦던 아저씨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선규야, 오늘은 꽝이야.”

나는 먼저 일어서며 집에 가자고 했다. 선규도 “응” 하고 따라 일어섰다.

그때 멀리서 짚차 한 대가 보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씽씽 달려오더니 우리 곁을 휙 지나갔다. 순식간에 먼지가 도로를 뒤덮었다.


“헬로우 짭— 콜록, 콜록—”

몇 마디 외치기도 전에 짚차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투덜거리며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끼익’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짚차가 멈춰 서 있었다.


도로 위에는 다시 먼지가 풀풀 날렸다. 군인은 먼지 사이로 무언가를 던지더니, 말없이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동시에 “앗싸!”를 외치며 달려갔다.


길옆 수풀 속에 통조림 하나와 껌 하나, 그리고 조그만 비스킷 상자가 떨어져 있었다. 통조림에는 영어 글씨와 고기 그림이 있었고, 비스킷 상자는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학교 언덕에 앉아 비스킷을 나누어 먹었다. 몇 개는 주머니에 넣었다. 군인들에게 몇 번 얻어먹은 비스킷이었지만, 먹을수록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얼마 먹지 않은 것 같은데 상자는 금세 빈 속을 드러냈다.

남은 것은 나누기로 했다. 선규는 껌과 통조림 중에서 껌을 골랐다. 예전에 고기 통조림을 먹고 설사를 한 적이 있다며, 이번에는 껌이 좋다고 했다. 아마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껌을 양보했지만 마음이 조금 쓰였다. 껌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단숨에 짱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통조림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군 아저씨가 줬다며 어머니께 내밀었다.


“귀한 걸 얻어 왔구나.”

어머니는 웃으며, 저녁 찌개에 넣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상에는 김치와 통조림 고기가 함께 끓여진 찌개가 올랐다. 형들은 “웬 괴기냐”며 반가워했고, 많지는 않았지만 얼큰한 국물과 간이 밴 고기는 식구들의 침샘을 충분히 자극했다.


이렇게 붉은 기름이 둥둥 뜬 김치 고기 찌개는,

우리 집에서 처음 끓인 부대찌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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