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아이스께끼

by 이의준평택


시계방은 우리 식구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내 주전부리를 책임져 주는 곳이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가게 앞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아버지는 장사에 신경이 쓰이셨는지, 아니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 그러셨는지, 이따금 십 원을 쥐여 주며 집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이면 나는 그 십 원을 움켜쥐고 시계방 앞 아이스께끼 공장으로 달려갔다. 잡화점을 겸하던 정자네 가게는 조그맣게 아이스께끼 공장도 운영했는데, 그곳 아이스께끼는 끝부분에 팥 앙금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공장에서 막 나온 단단한 아이스께끼는 십리사탕처럼 입으로 쪽쪽 빨아 먹으며 집으로 돌아와도 반쯤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아이스께끼를 신나에게 한입 베어 물려 주며 괜히 더 즐거워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는 내가 가게를 기웃거려도 용돈을 주지 않으셨다.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괜히 얼쩡거리는 버릇을 고치려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신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오빠, 나 아이스께끼 먹고 싶어.”

오늘은 신나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정자네 아이스께끼 공장에서 덜껑거리며 돌아가는 기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뒤에서 “너 뭐 해?” 하며 경찬이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경찬이는 진등에 살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용돈을 벌려는 것인지, 아니면 집안 형편을 돕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경찬이는 아이스께끼 장사를 했다.


공장에서 내준 파란 페인트칠 나무상자에 아이스께끼를 가득 담아,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 어귀 빨래터를 돌며 아이스께끼를 팔았다.


경찬이는 심심했는지, 오늘은 나와 함께 아이스께끼를 팔러 다니자고 했다. 특별한 놀이시설 하나 없던 그 시절, 동네 구경이 곧 놀이였다. 우리는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이 동네 저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뜨거운 햇살 아래 옥수숫대는 내 키보다 훨씬 컸고, 땀띠가 날 만큼의 여름 더위가 동네란 동네를 몽땅 덮고 있었다. 우리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 그늘에 쪼그려 앉아 숨을 돌렸다. 하늘의 태양은 모두들 집에 들어가 있으라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듯했다.


경찬이는 나무상자에 걸터앉아 아이스께끼 통을 열어 보았다. 통 안에는 슬슬 녹기 시작한 아이스께끼 몇 개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장사가 제법 되었는지, 그는 그만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거 다 팔아야지.”

내 말에 경찬이는 “됐어” 하며 씩 웃더니 아이스께끼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내 손에 쥐여 주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입에 넣었다. 경찬이는 아이스께끼를 쭉쭉 빨아 먹으며 그동안 번 돈을 세어 보더니, “가자” 하고 벌떡 일어섰다.


아이스께끼 공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경찬이는 통을 반납하고 나면 삼십여 분은 더 걸어야 집에 닿았다. 괜히 마음이 쓰였지만, 경찬이는 매일 걷는 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공장에 도착한 경찬이는 통을 반납하고 아이스께끼 세 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고생했다며 아이스께끼 두 개를 내게 내밀었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동생을 주라 했다.


됐다며 손을 내젓는 나를 밀쳐내고는, 경찬이는 내일 보자며 자기 집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스께끼를 입에 문 채 멀어져 가는 경찬이의 뒷모습에서 ‘참 덥네.’ 하는 소리가 따닥따닥 들리는 듯했고,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하던 그 여름날의 삶의 고단함이 오래도록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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