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arzo 1943
어릴 적 음식이 평생의 식습관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음악이나 주변 환경 역시 그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짓기에, 어린 시절의 환경은 정말 중요하다.
지금 내가 기타를 치고, 팝송과 깐쏘네에 빠져 있는 것도 모두 어릴 때 형님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릴 적 집에는 기타 하나가 있었다. 셋째 형님이 사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넷째 형님이 얻어 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타 실력만큼은 다섯째 형님이 가장 뛰어나셨다.
다섯째 형님은 가게를 보시다 무료할 때면 기타를 치셨는데, 내 기억으로는 「알함브라의 궁전」을 배우시다가 군대를 가신 것으로 기억한다. 「알함브라의 궁전」은 기타의 완결판이라 불리며, 그 곡을 연주하면 기타를 졸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그 시절에는 기타를 배우려면 동네 형들에게 막걸리를 사 주고 배우거나, 서점에서 교본을 사서 독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처럼 학원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연습하고 연주해야 했다. 그런데도 형님들은 모두 기타를 참 잘 치셨다.
형님의 기타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하고, 가슴 한편에서 열정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형님들은 내게 희망이었고, 스승이었다.
어느 날 넷째 형님이 「4 marzo 1943」을 원어로 부르시는 것을 들었다. 이 곡은 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용복 씨가 번안해 불러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다. 영어도 배우기 어려웠던 시절에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집 앞에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동네 형님이 계셨다고 한다. 넷째 형님은 그 형님에게 발음을 배워 「4 marzo 1943」을 부르셨던 것이다.
나는 노래의 뜻도 모른 채 엉터리 이탈리아어와 번안 가사를 섞어 부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 노래를 듣고는 내 등짝을 한 대 후려치셨다.
가사 중에 ‘불쌍하신 어머니, 왜 저를 낳으셨나요’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어머니 앞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으니 한 대 맞을 만도 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유학을 다녀온 동생에게 노래를 들어보라며 「4 marzo 1943」을 불렀더니, 노래는 잘 부르지만 억양에서 왠지 스페인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잘하는 거라며 웃었다. 요즘에는 기타 반주에 맞춰 원어 가사와 번안 가사를 섞어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잃어버린 조각이 있다. 노래를 부를 때 내 등짝을 후려치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곁에 없다는 것이다. 노랫말 속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나는 오늘도 기타를 치며, 그 시절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