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여름이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칼국수다.
왜 그렇게 덥고 습한 날에 칼국수를 해 주셨는지, 어린 마음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의 여름은 감자와 호박이 풍성한 계절이었고, 많은 식구들의 허기를 달래기엔 칼국수만 한 음식도 없었을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던 우리 집에서 쌀보다 밀가루는 훨씬 저렴한 식량이었다. 그래서 밀가루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칼국수뿐 아니라 찐빵, 만두, 막걸리 술빵, 튀김까지—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우리 식탁의 단골손님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루에서 칼국수를 미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밀가루 속 포대를 겹쳐 바닥에 깔고, 커다란 도마 위에서 반죽을 홍두깨로 밀고 계셨다.
호박덩이만 하던 반죽은 어느새 쟁반만큼 넓어졌고, 어머니는 그것을 차곡차곡 접어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드셨다.
부엌 앞마당에는 야외 화덕이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양은솥이 얹혀 있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호박과 풋고추를 따 우물가로 가 씻으셨다.
물이 많이 필요할 때면 내게 펌프질을 시키셨는데, 예전에 펌프 손잡이에 턱을 얻어맞은 적이 있었던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우물가에는 늘 물이 담긴 커다란 대야가 있었다. 간단한 그릇을 씻기도 하고, 펌프의 마중물로도 쓰였다.
어머니는 끓는 양은솥에 칼국수를 후르룩 풀어 넣고, 윤기 나는 풋고추와 감자도 듬뿍 썰어 넣으셨다. 부글부글 끓는 국수물에서는 맛있고도 행복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어머니는 허기진 나에게 국수 한 그릇을 퍼 주셨고, 형들과 누나도 한 그릇씩 받아 들었다. 나는 뜨거운 국수를 빨리 먹고 싶어 그릇을 들고 우물가 대야로 갔다.
물 위에 조심스레 국수 그릇을 띄워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후두둑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 그릇을 집어 드는 순간, 손에 묻은 물기 때문인지 그릇이 휙 뒤집혔다. 국수 그릇은 하얀 밑바닥을 보이며 대야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국수 가락을 건지려 대야바닥을 더듬었지만, 국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만 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퍼부었다.
어머니는 빨리 마루로 들어오라 하셨다. 아쉬운 칼국수를 뒤로하고 나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마루에 앉았다.
대야에는 물이 점점 차올랐고, 그 속에서 팅팅 불어터질 국수 가락이 눈에 밟혔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형들은 잘 먹었다며 트림을 했고, 나는 그 소리에 배가 더 고파졌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었다.
나는 힘없이 우물가로 가 허옇게 흐린 대야 물을 버리고, 하수구 채에 걸린 국수를 손으로 건져 잔반통에 넣었다. 속상했다.
어머니는 양은솥에 조금 남은 칼국수를 떠서 이것이라도 먹으라며 내게 주셨다. 퉁퉁 불어 가래떡처럼 굵어진 칼국수였다.
서쪽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차갑게 불어버린 국수를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