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와의 동침
넷째 형은 우리 집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다.
서울 대 법대에 지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산 (천안시 직산면)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다.
형님들의 고집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둘째 형은 장학생이 되겠다며 친구도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양쪽 눈썹을 모조리 밀어버렸다 그런 형님의 모습에, 부모님은 크게 놀라셔서 형님을 혼내신 적도 있었다.
그런 집안의 기질을 닮아서였을까. 넷째 형은 아침에 책상 앞에 앉으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허리를 한 번도 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 늦 가을날, 넷째 형은 어디선가 독사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아버지가 다 드신 소주병에 그 독사를 집어넣고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요즘 소주병은 돌려서 다시 잠글 수 있지만, 그때의 소주병은 왕관뚜껑이라 한 번 따면 다시 닫을 수가 없었다.
형은 공부하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펜촉으로 병 속 독사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곤 했다. 화가 난 독사는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병 밖으로 나오려 했고, 그 순간의 섬뜩함에 형의 잠은 단번에 달아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밤늦도록 책을 보다가 결국 잠에 못 이겨 책상에 엎드렸던 모양이다. 그만 손으로 병을 툭 건드렸고, 힘없이 얹혀 있던 왕관뚜껑이 열려 버렸다. 독사는 그 긴 감옥에서 마침내 탈출했다. 잠결에 놀라 일어난 넷째형은 뱀을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형, 형, 뱀이 없어졌어.”
넷째 형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둘째형을 깨웠다. 밭일에 지쳐 일찍 잠든 둘째 형은 넷째형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내용을 듣고서는 식구들을 모두를 깨웠다. 방 안에 뱀이 있다면, 그날 밤, 잠은 이미 다 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 가구도 없는 아랫목으로 몰려갔고, 윗목 쪽을 향해 서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물을 거두듯 살림살이를 하나씩 뒤로 옮기며 뱀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살림이라 해봐야 별것 없어 큰 문제는 없었지만, 윗목에 놓인 커다란 나락뒤주가 문제였다. 그 안에는 고구마와 옥수수가 가득 들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뒤주 속 작물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갈무리해 둔 고구마를 거의 다 꺼냈을 즈음, 한쪽 구석에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둘째 형은 집게를 들어 재빨리 뱀을 집어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형은 넷째 형의 뺨을 한 대 치고는, 아무 말 없이 모두 자라고 했다.
늦가을 밤, 독사와의 동침은 그렇게 끝이 났고 넷째 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끝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