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설막 (설탕+막걸리)

by 이의준평택

설막 (설탕+막걸리)

우리 가게는 막걸리 공장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시계방이었다. 가게의 삼분의 일쯤은 임시로 살림을 할 수 있게 꾸며 놓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장사 공간이었다. 그 시절에는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경비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곳에서 잠을 자야 했다.

집과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요즘처럼 새콤 같은 경비 회사가 있을 리 없던 때였다. 가게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우리 집은 구남매였기에 형들이 돌아가며 가게를 지켰다. 특히 가게를 지키는 날이면 아버지나 큰형이 용돈을 조금 쥐여 주었는데, 그 돈은 으레 저녁 주전부리 몫이었다.


어느 날, 넷째 형과 다섯째 형이 가게 방에서 잔다고 했다. 혹시 얻어먹을 것이 있나 싶어 가게 주변을 기웃거렸다. 다섯째 형은 가게 방 한구석에서 흑설탕 봉지 하나를 꺼내 바닥에 펼쳐 놓았다. 잔멸치 한 종지와 고추장도 보였지만, 아무래도 저녁밥상을 차릴 분위기는 아니었다.


넷째 형은 내 손에 노란 주전자와 돈 삼십 원을 쥐여 주며, 아버지 심부름을 왔다고 하고 막걸리 공장에서 막걸리를 받아 오라고 했다. 술심부름이야 종종 하던 터라 어려울 건 없었지만, 왜 하필 나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막걸리 공장에는 커다란 독 다섯 개가 땅에 묻혀 있었다. 그 독들을 들여다보면 마치 우물 속처럼 깊어 보였고, 우유빛 막걸리는 묘한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께 삼십 원과 주전자를 내밀자, 긴 국자로 독을 몇 번 휘저으신 뒤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담아 주셨다.


나는 낑낑거리며 그 주전자를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형들은 막걸리를 큰 대접에 따르고 흑설탕을 듬뿍 넣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몇 번을 저은 뒤 넷째 형이 맛을 보더니, 됐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이른바 ‘설막’(설탕을 넣은 막걸리)이 완성되었다.


형들은 맛있다며 큰 대접을 돌려가며 마셨다. 무슨 맛일지 궁금해진 나는 조금만 달라고 졸랐다. 형들은 서로 얼굴을 한번 마주 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고는, 결국 내게도 한 잔을 내밀었다.


약간 떫으면서도 달콤하고, 혀끝을 톡 쏘는 느낌.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맛이었다. 그래도 달달함에 이끌려 잔을 끝까지 비웠다. 형들은 얼씨구 하며 껄껄 웃더니 멸치 하나를 내게 건넸다.


멸치를 씹고 있는데, 머리가 띵해지며 몸이 묘하게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어지럽다고 말한 것 같은데, 그 뒤로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가게 창문 틈으로 햇살이 가득 스며들고 있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조용히 똑딱 똑딱 소리만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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