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시절

문간방 군인 아저씨

by 이의준평택

우리 집 문간방에는 신혼부부인 장교 내외가 살았다. 어릴 적 나는 문간방에 자주 놀러 가 장교 아저씨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만져 보며 신기해했다.


하루는 아주머니께서 장교 아저씨가 쓰던 중위 계급장을 하나 주셨다. 나는 내가 아끼던 옷에 번쩍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군인 흉내를 내며 동네를 쏘다녔다.


장교 아저씨는 항상 정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다니셨는데,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아저씨에게 총을 만져 보고 싶다며 졸랐다. 권총 가죽집 안에서 반짝이던 권총은 어린 내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다가도 퇴근해 돌아오는 장교 아저씨를 발견하면 "충성"이라 외치며 경례를 했다. 아저씨는 웃으며 경례를 받아 주었고, 가끔 부대에서 가져온 과자를 나누어 주셨다. 아이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내 주위를 에워싸고는 “한 입만, 한 입만” 하며 내 선심을 기다렸다.


어느 날 군인 네댓 명이 우리 집에 들르더니 마당에 빈 수류탄 보관 통을 한가득 쏟아 놓고 갔다. 훈련을 마치고 버려진 보관 통으로, 부대에서는 이런 것들을 쓰레기로 취급해 소각한다고 했다. 검은 타르가 입혀진 그 통은 두꺼운 종이로 겹겹이 말려 있어 불쏘시개로는 더없이 좋았다.


그 시절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 난방을 했다. 땔감이 귀하던 시절이라 겨울이 다가오면 모두들 난방 걱정을 했는데, 우리는 군인 장교를 세 준 덕분에 부대에서 나오는 나무 상자와 종이를 종종 얻어 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활달하던 아주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간방 부엌에서 뛰쳐나왔다. 아주머니는 곧장 가게 방으로 달려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 두 명이 짚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주임상사로 보이는 군인은 “많이 놀라셨죠”라며 수류탄 보관 통 하나를 건네받고는 돌아가겠다며 거수경례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통 안에 수류탄 한 발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만약 아주머니가 멋모르고 그 통을 아궁이에 던져 넣었다면, 아주머니는 물론 우리 집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교 아저씨는 이사를 갔다. 수류탄 사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발령이 나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 군인 아저씨에 대한 짧은 기억은 그렇게 수류탄 사건과 함께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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