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그 림

by 이의준평택

그 림

그 후로도 우리는 종종 야구를 했고, 오징어찡도 실컷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이 끝나가던 오후, 선생님은 병천에서 열리는 종합예술제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셨다. 예술제에는 백일장과 사생대회, 고무판화, 연극 같은 종목이 있었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백일장과 그림, 판화 부문만 출전한다고 했다.


“예술제에 참가할 사람?”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택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뒤로 교실은 잠잠했다. 선생님은 최소한 세 명은 나가야 한다며 아이들을 둘러보며 재촉하셨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우택이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명호랑 의준이를 추천합니다.”

선생님은 나와 명호를 번갈아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명호는 글을 잘 쓰니까 백일장에 나가고, 우리 반 화가는 우택이가 사생대회로… 음—”

잠시 망설이던 선생님은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의준이는 판화를 하면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반 대표가 되었다. 그날 이후 야구는 접었고,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각자 대회 연습을 했다. 선생님이 들어와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실 때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처음 들은 말이 ‘양각’과 ‘음각’이었다.

상을 받으려면 양각을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끝없는 집중과 세밀함이 필요했다.


처음엔 새롭고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무판화는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시거나 바쁘신 날에는, 우리는 학교 옆 배 과수원 언덕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하지만 바닥에 판을 놓고 칼로 고무를 깎아야 하는 나는 사실상 연습이 어려웠다. 아이들이 각자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나는 언덕에 벌러덩 누워 하늘만 바라보곤 했다.


“의준아, 심심하면 너도 그림이나 그려.”

우택이는 그렇게 말하며 스케치북 한 장을 툭 내밀었다.

마침 할 일도 없던 나는 우택이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제에 출전한다는 소식에 우택이 어머니는 우택이에게 크레파스 36색을 사 주셨다. 우리 무릎 사이에 놓인, 한 번도 쓰이지 않은 크레파스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형에게 물려받아 부러지고 무뎌진 내 12색 크레파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고동색과 녹색조차 없는 색들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걸로 하늘을 칠하고 나무를 그렸다.


교정 위를 떠돌던 구름이 서서히 돌아가고, 저녁노을이 정자네 양옥집 벽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자 우리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다음에 또 그리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덕을 내려오는 우택이의 옆모습은,

마치 시합을 앞둔 선수처럼 어딘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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