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전학 온 친구

by 이의준평택

전학 온 친구

우택이는 잘나가는 집 아이였다.

우리 집 옆에 살았는데, 햇빛을 받으면 번쩍거리는 기와지붕의 집에서 살았다. 소문에 따르면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지내고, 어머니와 우택이만 시골집에 산다고 했다.


집에는 ‘이모’라 불리는 식모가 있었는데, 우택이네 집에서 먹고 자며 살림과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우택이와 나는 같은 반이었고, 아침이면 종종 나란히 학교에 갔다. 같은 반이었지만 나는 키가 작아 늘 앞줄에 앉았고, 우택이는 반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커서 늘 뒷줄 자리를 차지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펼쳤다. 그 가운데서도 우택이의 도시락은 늘 시선을 모았다. 밥 위에는 언제나 계란 후라이가 두 개씩 얹혀 있었고, 어떤 날은 소시지가, 또 어떤 날은 빵과 우유가 함께 들어 있었다.


우택이가 “오늘은 밥 먹기 싫다”며 빵과 우유를 버리려 하면, 아이들은 무슨 소리냐며 벌떼처럼 달려들어 서로 자기에게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방과 후에는 야구를 했다.

야구라 해 봤자 정구공 하나와 우택이가 가져온 야구 글러브, 그리고 방망이 대신 허름한 곡괭이 자루가 전부였다. 그래도 우리에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우택이는 늘 파란 모자를 쓰고 나왔다. 앞에는 ‘K’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모자의 K 자는 Korea의 약자라며 자신은 대한민국 선수라고 자랑했다.

그러면 나와 다른 아이들은 대만이나 미국, 호주 선수로 정해졌다. 투수 마운드에 서서 늠름하게 폼을 잡는 우택이의 모습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 역시 K가 박힌 파란 모자를 갖고 싶었지만,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집안 형편에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사 주신다 해도, 시골 동네에서 그런 모자를 찾는 일은 수풀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날도 우리는 한창 야구에 빠져 있었다.

“스트라이크.” “볼.”

우택이는 포수의 사인을 받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들고는, 제법 투수 흉내를 내며 힘껏 공을 던졌다.


그때 동네 중학생 형 하나가 다가와 타석에 섰다. 아이들은 모두 말렸지만 우택이는 괜찮다며 공을 쥐었다. 우택이가 던진 공은 포물선을 그리다 옆으로 떨어졌다.


이른바 아리랑 볼이었다. 헛스윙을 한 중학생 형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우택이는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어 삼진을 잡았다.

아이들은 “와—” 하고 환호했다.


머쓱해진 중학생 형은 정구공은 시원찮다며 진짜 야구공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실밥이 군데군데 풀려 있었지만 돌처럼 단단한 공이었다. 우리는 저 공에 맞으면 죽는다며 웅성거렸다.


우택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는 다시 시작됐다. 첫 공부터 정확한 스트라이크였다. 아이들은 더욱 큰 소리로 우택이를 응원했다.


두 번째 공은 중학생 형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움찔 놀라는 모습에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우택이는 이제 완전히 기세가 오른 듯,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 순간이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파란 하늘에 하얀 공이 점처럼 보였다.


“의준아! 잡아, 잡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공이 크게 보이다가, 갑자기 번쩍하더니 앞이 깜깜해졌다. 정신이 멍해진 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의준이가 다친 것 같아.”

“피 좀 봐.”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아이들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고, 눈 밑으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손에 끈적이는 감촉이 느껴졌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분명 붉은색이었다. 그제야 공에 맞았다는 걸 알았다.


높이 뜬 공은 오른쪽 눈 아래 뼈를 정통으로 때렸고, 살이 조금 찢어졌다. 누구 손에 이끌려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수돗가에서 눈을 씻고, 진정이 될 때까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다치면서 야구는 끝이 났고,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수돗가 바닥에 고인 물 위로 파란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 눈도 그 하늘을 닮아가려는지, 점점 푸른 멍이 번져갔다.


그제서야,

갑자기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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