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대 회

by 이의준평택

대 회

정확히 기억이 나는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짐짝처럼 아이들 틈에 섞여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소형버스는 시내버스처럼 가운데 통로에는 자리는 없었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속이 울렁거리고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는데, 버스는 우리를 병천 초등학교 교정에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

병천은 유관순 누나의 고향이고,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그런 유관순 열사를 기리기 위해 이번 초등학교 예술제가 이곳에서 열렸다.


우리는 닭장 속 병아리들처럼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큰 목소리로 불러 운동장에 세워진 팻말 앞으로 줄을 세우셨다. 우택이는 사생부 팻말 아래로, 명호는 백일장부로, 그리고 나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 섞여 판화·조각부 줄에 섰다.


운동장은 각 학교를 대표해 온 학생들로 북적였다. 팻말을 든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학교 가운데 있는 교실로 안내되었다.

교실 안에는 근엄한 시험관 선생님이 계셨다. 안경을 코끝으로 내려쓰고, 눈은 위로 치켜뜨신 얼굴이었다. 이름과 학교를 확인한 뒤, 책상 위에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주의사항을 차분히 읽어 내려가신 뒤 질문을 받겠다고 했지만, 교실은 조용했다.

우리는 연필과 조각도만 책상 위에 올려두고 시작종을 기다렸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교실의 침묵을 깨뜨렸다.


땡땡땡.

종이 울리자 대회가 시작됐다. 나는 정신없이 판화판에 조각도를 먹였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없다. 창밖에서 담임선생님이 무언가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다시 종이 울렸고, 대회는 끝났다.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판화를 잠시 보시더니 별다른 말 없이 “고생했다”라고만 하셨다. 그 표정만 봐도 내 결과가 어느쯤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택이는 그림을 잘 그렸는지 선생님께서 등을 두드리며 잘했다고 하셨고, 명호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이 쏙 빠져 있었다.

대회 정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교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했다. 달고나, 쫀디기, 과자들을 파는 장사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우택이는 쫀디기 한 봉지를 사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한 조각씩 입에 물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아침에 어머니가 쥐여 주신 십 원을 손에 쥐고 무엇을 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담배 곽만 한 카라멜 상자 하나를 샀다. 그 안에는 카라멜이 열두 개 들어 있었다. 우택이와 명호에게 하나씩 나눠 주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넣었다.


“오빠, 맛있는 거 사 와.”

동생의 목소리가 주머니 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경도 지루해질 즈음, 선생님은 아침에 타고 온 버스를 타라고 하셨다. 운 좋게 맨 뒷자리에 앉았지만, 버스가 덜컹거리며 달릴수록 앉아 있는 것보다 서 있는 게 더 편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짐짝처럼 한참을 달렸다.


또다시 멀미가 올라올 즈음, 버스는 우리 학교 운동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아이들이 하나둘 내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내리려는 순간 발바닥에 무언가 물컹거렸다.


카라멜 상자였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과 얼마나 뒤엉켰는지, 주머니 속 카라멜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밟고 지났는지 상자는 쥐포처럼 납작해져 있었고, 갈색 카라멜은 속을 터뜨린 채 상자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실망한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터지지 않은 카라멜을 찾았다. 흙이 살짝 묻었지만, 형태를 간신히 유지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야 이놈아, 빨리 나와!”

버스 아저씨의 소리에 나는 카라멜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버스에서 내렸다. 속상한 마음이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어졌다.

그러면서도 동굴 밖으로 나온 것처럼, 낯익은 학교 풍경 앞에서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다.


며칠 뒤, 결과 발표가 있었다. 아침 조회 시간, 교감 선생님은 구령대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려두고 안경을 고쳐 쓰고 계셨다.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기에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 모른 채 웅성거렸고, 나는 괜히 가슴이 조여 왔다.


“지난번 병천 예술제 결과가 나왔다.”

갑자기 운동장이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종이를 내려다보며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먼저 다른 반 아이들의 이름이 불렸고, 이어서 우리 반 차례가 왔다.

사생부에서 우택이의 이름이 불렸다. 장려상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우택이는 어쩐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구령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이 그날 언덕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백일장 부문에서는 명호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명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발로 운동장을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판화 부문.

교감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종이를 내려다보셨다.

그리고는 ‘이상’ 하면서 구령대를 내려 오셨다.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발표도, 설명도 없었다.

조회가 끝나고 아이들은 떠들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우택이는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았고, 명호는 “괜찮다”며 애써 웃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책상 속 조각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이 유난히 가벼웠다.


상도 없고, 이름도 남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이상하게도 크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아마 이미 버스에서, 카라멜이 짓이겨진 순간에 한 번 다 울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방과 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어울렸다.

야구 얘기를 했고, 오징어찡 얘기를 했고, 다음엔 뭘 하고 놀지 이야기했다. 우택이는 여전히 믿음직스러웠고, 명호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곁에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예술제에서 내가 얻은 것은 상장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일보다 먼저 배워야 했던 마음의 무게였다.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손에 남는 것이 없어도, 그 하루가 사람 안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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