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학 여 행
수 학 여 행
수학여행 철인지, 요즘 거리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식당 앞에 관광버스가 멈출 때마다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고, 관광지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요란한 말소리는 한여름 매미 떼처럼 쉼 없이 울어댄다.
그 소란 속에서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청보리가 익어가던 계절, 아이들로 가득했던 내 어린 날이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불려 나왔다. 이유도 없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웃음은 오래된 기억을 가장 먼저 깨우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선재가 늦고 있었다. 열차는 곧 들어온다는데, 담임선생님의 얼굴에는 점점 초조함이 번졌다. 선재 소식을 아느냐고 물어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병점에 있는 용주사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는 사찰이며 정조의 효심이 깃든 곳이라,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설명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관심은 역사도, 사찰도 아니었다. 누구와 짝을 할지, 도시락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그게 전부였다.
수학여행을 며칠 앞두고 선재는 자주 교무실로 불려갔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이번 여행에는 함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전에 선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깊은 기침을 토해내고 계셨다. 우리는 그 소리를 뒤로한 채 뒷산으로 올라가 비단벌레를 잡았다.
“이번엔 꼭 이길 거야.”
“2반 재성이 놈보다 더 큰 놈을 잡아야 해.”
늘 씩씩하던 선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수학여행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고양이 앞의 병아리처럼 작아졌다.
선생님의 배려였는지, 목소리 큰 육성회장님의 도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선재도 우리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새벽 네 시, 우리는 성환 역에 모였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에는 샛별이 초롱초롱 박혀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씩 세며 개찰구 안으로 들여보내셨고, 안경을 깊이 눌러쓴 역무원은 카운터기를 딸깍딸깍 눌렀다. 플랫폼에서는 호각 소리와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차에 오른 우리는 담임선생님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있는데, 5학년 2반 선생님이 다급히 다가와 담임선생님께 무언가를 말씀하신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모두 자리에 앉으라 하시고는 급히 열차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선재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볼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자기를 두고 기차가 떠날까 봐 울면서 달려왔단다. 왜 늦었느냐는 질문에 선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어둠 속 마을불빛이 하나 둘 뒤로 밀려나고, 아이들의 환호가 차창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해가 떠올라 바깥은 환해졌고, 선생님은 곧 병점에 도착한다며 소지품을 챙기라 하셨다.
기적 소리 두 번, 쇳소리가 귀를 긁으며 기차는 멈췄다. 역 광장에서 인원을 확인할 즈음, 붉은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완전히 와 있었다.
용주사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자갈이 깔린 신작로 위로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일었고,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배가 고파지자 나는 가방에서 빵을 꺼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조각만 달라며 내미는 손들 사이로, 선생님의 호각 소리가 아이들을 멈춰 세웠다.
소나무가 빽빽한 숲과 잘 정돈된 잔디가 눈앞에 펼쳐졌다. 용주사였다. 우리는 기와지붕의 위용에 놀라고, 융릉을 보며 썰매를 탈 수 있겠다며 떠들었다. 범종 앞에서는 에밀레종이 아니냐며 쳐보고 싶다고 웅성댔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짝을 찾아 흩어졌다.
나는 선재와 몇몇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 뚜껑이 “따다락” 소리를 내며 열리자, 김밥 속 시금치와 단무지, 노란 계란이 햇살에 반짝였다.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내 가방 한가운데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과 반월사이다, 오징어, 징기스칸 빵이 위풍당당하게 들어 있었다. 비닐과 종이를 덧대 굵은 실로 꿰맨 가방은 내 자랑이었다. 그런 가방을 멘 아이는 반에 몇 되지 않았다.
선재는 도시락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도시락을 풀자, 습기를 머금은 종이가 찢어질 듯했다. 파래 김에 싼 보리밥, 가운데에는 멸치 몇 마리. 선재는 그 멸치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선간장의 냄새가 잔디 냄새와 섞여 묘하게 퍼졌다. 나는 말했다. “그거 던져버리고, 우리 거 먹자.”
아이들이 웃으며 거들었고, 선재는 잠시 망설이다 신문지 채 숲 구석으로 도시락을 던졌다. 우리는 김밥을 나눠 먹으며 깔깔거렸다. 반월사이다의 톡 쏘는 달콤함처럼 수학여행은 즐거웠고, 설탕물을 뒤집어쓴 징기스칸 빵은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선재의 자존심을 던지게 했고 선재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흙 위에 버리게 했다. 몇 조각의 김밥으로, 나는 선재에게 오래 남을 상처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선재야, 그땐 내가 철부지였어, 미안하다.”
가끔 용주사에 들를 때면, 그날 점심을 먹던 자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선재 어머니의 슬픔과, 선재의 눈물을 떠올리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 살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