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졸업식

by 이의준평택

졸 업 식

졸업식이 다가오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우며 말씀하셨다. “졸업식 날 국회의원 상을 받게 되었으니, 부모님께서 꼭 오셔야 한다.”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지만,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끄덕임이 ‘오겠다’는 약속인지, 아니면 그저 ‘알았다’는 표시였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조심스런 기대는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졸업식 날, 운동장은 부모들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국회의원 상, 6학년 1반 이의준.”

이름이 불리자 나는 힘껏 “네!” 하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으로 뛰어 나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본다. 수많은 부모들 사이 어디쯤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까 눈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끝내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교가와 졸업식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동네 동춘옥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며 여기저기서 떠들썩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부모님을 찾아보았지만, 인파가 하나둘씩 다 빠져나가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떨 군 채 터벅터벅 졸업식장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 문득 시야 한 켠에 익숙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괘종시계를 등에 짊어지고 계셨고, 한 손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계셨다. 얼마나 급하게 오셨는지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시계 배달을 하던 중이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졸업 축하한다” 하고 짧게 말씀하시며 꽃과 함께 꼬깃한 5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여 주셨다.


“집에 가는 길에 자장면 사 먹어라.”

그 말만 남기고 어머니는 다시 학교 후문 쪽으로 서둘러 걸어가셨다.

어머니보다도 더 큰 괘종시계가 팅, 팅 소리를 내며 등을 누르고 있었고, 휑한 겨울바람의 먼지가 왠지 모르게 내 눈물을 대신 가려 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졸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뒤뚱뒤뚱 걸어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신의 키보다 큰 괘종시계를 짊어진 채, 삶이라는 시간을 어깨에 메고 가시던 그 모습.


그 시절엔 살아간다는 것이 왜 그리도 팍팍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팍팍한 시간 속에서도 나를 향해 꽃 한 송이와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던 어머니의 하루가 시계처럼 조용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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