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물 딱 지
보 물 딱 지
옛날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듯이 우리 집 천장도 허술했다. 가느다란 막대 몇 개를 가로질러 얹고 그 위에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인 뒤, 도배지를 발랐다.
조금 살림이 나은 집들은 신문지 대신 얇은 베니어판을 썼다지만, 우리 집은 몇 해가 더 지나서야 겨우 베니어를 붙일 수 있었다. 천장은 늘 얇고, 집은 늘 숨 쉬듯 흔들렸다.
천장과 석가래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다. 쥐들의 놀이터이자 운동장이었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면,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쥐들은 거침없이 오르내리며 여기저기 실례를 남겼고, 그 흔적들은 천장 위에 기묘한 지도처럼 번져 갔다.
지도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우리는 또다시 천장 도배를 해야 했다. 그때마다 천장을 뜯고, 쥐구멍을 메우고, 쥐똥과 오물을 치우는 일은 그 시절의 일상이었다.
넷째 형과 다섯째 형은 한동안 딱지 모으기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두 형은 자루포대 하나를 질질 끌며 방으로 들어왔다. 포대 안에는 딱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전까지는 밖에 두었던 탄피 상자에 딱지를 보관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흩어져 있던 딱지를 모조리 긁어모은 것이다. 공부는 뒷전이고 딱지 따먹기만 한다고 둘째 형에게 호되게 혼난 뒤라, 더더욱 숨길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시절 딱지는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었다. 도화지처럼 빳빳한 종이에 군대 계급장이 그려져 있었고, 손으로 밀면 동그란 딱지가 똑 떨어졌다. 엎어 놓은 딱지 위에 자신의 딱지를 걸고 겨루는 게임에서, 계급이 높은 쪽이 상대의 딱지를 차지했다.
가끔 딱지가 많으면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했는데, 형들이 가져온 딱지의 양을 보아하니 며칠 동안 밖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온 것이 분명했다.
형들은 그 소중한 딱지를 윗목 천장 구석을 살짝 찢어, 천장 속에 몰래 숨겨 두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님들의 비밀장소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어느 날, 천장 위에서 쥐들이 유난히 요란하게 뛰어다니자 셋째 형이 빗자루로 천장을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하필 딱지를 숨겨 둔 천장이 무너지며 딱지들이 방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색색의 딱지들이 마치 폭포처럼 떨어졌다.
셋째 형은 이 사실을 곧장 둘째 형에게 알렸다. 둘째 형은 말없이 딱지를 모아 마당 한가운데 쌓아 놓더니 성냥을 켰다. 넷째 형이 달려가 제발 그러지 말라며 사정했지만, 이미 불길은 붙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며 소리치는 넷째 형을 셋째형이 잡으려 하자, 넷째 형은 도망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방으로 숨어들어 문을 걸어 잠갔고, 문밖에서는 셋째 형의 고함이 이어졌다. 방안에 있던 나는 두 형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
마당에서는 둘째 형이 딱지의 불을 보고 계셨다. 넷째 형은 방문 창살 사이로, 불타오르는 딱지를 보며 소리소리 울부짖었다. 특히 ‘승리’라 불리던 딱지 한 무더기가 불길 속으로 던져질 때, 그 울음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승리는 딱지 판에 단 한 장만 존재하는 딱지로써, 모든 딱지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딱지였다. 나 역시 그 딱지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붉은 불길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넷째 형은 체념한 듯 신음 소리를 내며 불타는 딱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는 눈물과 함께,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복수의 불길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딱지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그 딱지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었다.
오늘 가장 중요해 보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도 하고, 사소해 보이던 것이 세월이 흐른 뒤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날의 불길 속에서 사라진 딱지들은 종잇조각이었지만, 넷째 형의 마음속에서는 한 시대가 함께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시절 그 사건은 넷째 형에게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