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달고나

by 이의준평택

달고나

“아이고~~ 잔머리의 대왕.”

가끔 안사람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을 요령껏 넘긴다는 핀잔 같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곧잘 찾아낸다는 칭찬 같기도 하다. 그 말에 웃으며 넘기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순발력과 응용력은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만들어 낸 생존의 기술에 가까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늘 띠기 아저씨가 있었다. 우윳빛으로 쭉 욱 늘어지는 달고나와 햇살을 머금은 황금빛 띠기는, 좌판 위에서 반짝이며 달콤한 냄새를 흘려보냈다. 그 냄새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향긋한 보물의 자태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침은 목구멍을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른다.

아저씨의 손놀림은 마술 같았다. 국자에 담긴 설탕이 연탄불 위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나무젓가락 끝에 묻힌 소다가 닿는 순간 노란 황금빛이 살아 움직였다.


‘푸른’ 하며 부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한 김이 올라오면, 그걸 쇠판에 ‘딱’ 내리쳐 띠기를 내려놓고 둥근 판을 눌러 별을 찍고 십자가를 찍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숨도 못 쉬고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친구 하나가 띠기를 얻어 들면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으려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


집에는 설탕도 있었고 소다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끔 빵을 구워 주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자였다. 얼마 전 누나가 국자로 띠기를 만들다 들켜 호되게 맞는 걸 본 터라, 국자는 절대 손댈 수 없는 금단의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그 달콤한 기억을 포기하기엔 어린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어느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두엄간으로 가던 길에 눈에 띄는 쇠붙이가 있었다. 부탄가스통이었다. 바닥이 살짝 들어간 걸 보자 머릿속에서 번쩍 불이 켜졌다. ‘몸통을 자르고 바닥을 뒤집어 철사로 엮으면… 국자 모양이 되겠는데?’


나는 쓰레기를 던지듯 버리고 연장통에서 가위를 꺼냈다. 부탄통을 싹둑 자르고, 철사를 구해 펜치로 구부리며 국자 같은 형상을 만들어 갔다.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그런데 문제는 접합부였다. 두꺼운 철판이 쉽게 잘리지 않았다. 힘을 더 주는 순간, 손이 미끄러졌고 하얀 철판이 쏜살같이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피가 철철 흘렀다. 아픔보다 먼저 든 생각은 ‘큰일 났다’였다. 혼날 게 분명했기에 소리 한 번 못 내고 안방에서 탈지면을 꺼내 상처를 감쌌다. 피가 떨어진 마루를 닦고 흔적을 지우려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셋째 형이 그런 나를 보고 놀라며 소독약과 붕대를 가져왔다. 그제야 참아 두었던 아픔이 몰려와, 나는 형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처는 깊었다. 지금 같으면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할 상처였지만, 그 시절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힘줄만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손을 곧게 펴 지혈하고,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은 채 빨리 아물기를 기다렸다.


한 달쯤 지나고 상처가 거의 아물었을 무렵, 나는 다시 부탄 국자를 완성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천천히. 완성된 국자를 들고 낭가 앞에서 띠기를 만들었다.


황금빛 설탕이 부풀어 오르자 양은쟁반 위에 ‘딱’ 떨어뜨리고, 스테인리스 그릇 바닥으로 눌러 대충 별 모양을 냈다. 그날의 띠기는 좌판 아저씨의 것보다 모양은 투박했지만, 맛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했다.


그 후로 의열이 누나와 나, 그리고 낭가는 부엌 구석에서 띠기를 만들며 한동안 작은 축제를 열었다. 그러다 설탕이 유난히 빨리 줄어드는 걸 눈치챈 어머니께 들통이 났고, 우리는 매타작을 모지게 당하며 그 달콤한 시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도 내 왼손 바깥쪽, 중지와 약지에는 그때의 흉터가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며 주름 속에 묻혀 희미해졌지만, 살이 통통하던 시절엔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흉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아픔보다 먼저 웃음이 난다. 황금빛 띠기와 부탄 국자, 그리고 부엌 구석의 웃음소리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누나와 낭가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내 왼손에 남은 이 잔머리의 흔적은, 아마도 그 시절을 잊지 말라고 조용히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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