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찍기
벽돌 찍기
어르신의 집은 초가를 개량한 스레트집이다.
마루가 딸린 방벽은 흙벽돌로 쌓아 올려 여름이면 에어컨이 없어도 서늘함이 있다고 하신다. 햇볕이 뜨겁게 내려앉는 날에도 벽은 한 박자 늦게 열을 품고, 다시 천천히 식는다. 집은 그렇게 주인의 세월을 닮아 숨을 쉰다.
안방과 맞닿아 있는 부엌 또한 흙을 다져 만든 벽이다. 이번 장마가 길었는지 벽의 한쪽이 물기를 머금은 채 흘러내렸고, 그 속에서 하얀 옥수수대가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벽은 속살을 드러낸 채 말없이 세월을 증언하고 있었다.
항상 준비할 것이 많은 용수 어르신께 “어르신, 천천히 나오세요.” 하고 차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알았다고 하신 지는 벌써 십여 분. 소식이 없어 나는 기다림 삼아 마당을 둘러본다. 그때 마당 한구석에서 낯익은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회색 시멘트를 뒤집어쓴 철제 도구.
시멘트 블록을 찍던 수동식 틀이다. 안쪽 통과 바깥 통 사이에 시멘트를 채워 넣고, 두 손으로 흔들어 빈틈을 없앤 뒤 레버를 눌러 위에서 꾹 찍어내던 도구다.
바깥 통을 살살 떼어내고 속통을 위로 뽑아 올리면, 구멍 난 시멘트 블록 하나가 묵묵히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을 사각 상자 받침에 얹어놓고 햇볕 아래 놓아 양생시키면, 담벼락을 만드는 시멘트 블럭이 된다.
그 도구 앞에서 나는 문득 어린 시절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닷째 형은 틈만 나면 시멘트 블록을 찍었다. 내년에 지을 집에 쓰일 자재였다. 한쪽 구석에는 볏짚을 썰어 섞은 황토 흙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 역시 집을 지을 흙벽돌이 될 자재였다. 그 시절엔 그렇게 모든 것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이었다.
나는 형을 도와 판때기를 가지런히 놓았다. 형은 무거운 시멘트 블록이나 흙벽돌을 판때기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흔들어 틀을 뺀 뒤 다시 다음 블록을 찍으러 간다. 울퉁불퉁하게 솟은 형의 팔 근육을 보며, 나는 든든한 형을 보며 왠지 자랑스러워졌다. 그러면서도 고생만 하는 형이 못내 안쓰러웠다.
“형, 언제 끝나.”
지치고 지루해진 일에 꾀가 나면서 쉬자고 재촉한다. 형은 웃으며 말한다.“저 벽돌로 네 에스키모 집 만들어 줄 테니까, 열심히 일이나 해.” 농땡이를 피우려는 나를 그렇게 달래던 형은 그날도 정해진 할당량의 벽돌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선생, 어여 가.”
어르신이 신을 신고 나오시며 센터로 가자 하신다. 나는 어르신을 부축하며 무너진 부엌 벽을 가리키며 왜 아직 수리를 못 하셨냐고 묻는다. 어르신은 혼자서는 힘에 부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번 토요일에 아들이 내려오면 함께 고치려고 마음먹고 계시단다.
“벽은 어떻게 고쳐요?”
내 물음에 어르신은 볏짚 섞은 황토 흙을 둥글게 말아 밖에서 한 번, 안에서 한 번, 두드리듯 던진다고 하신다.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오십여 년 전, 남산 부엌을 고치던 넷째 형님의 방식과 거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볏짚이 섞인 황토는 흙을 단단히 결속시켜 비틀림과 눌림에 강하다. 다만 습기에 약해 마감으로 시멘트를 바르곤 했는데, 요즘은 황토 코팅 방식이 있어 큰 걱정은 없다고 한다. 재료의 기술은 변해도 손으로 하던 방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르신의 부엌 벽과 시멘트 블록 틀 앞에 서자, 나는 어느새 타임머신을 탄 사람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었다.
시멘트가 눌어붙은 블록 틀과 물기 어린 흙벽 앞에서, 남산의 뜨거운 햇살과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새벽녘 안개처럼 되살아났다. 말없이 집안일을 거들던 형님들의 묵묵한 수고는 뭉게구름처럼 겹쳐져 지고 내 시야 위로 천천히 떠오른다. 그 속에서 나는 잠시, 아주 잠시, 어린 날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