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너 이리 와봐

by 이의준평택

너 이리 와봐

바랜 검은 교복을 입은 우리는 삐죽삐죽 어깨를 세운 채 학교 정문을 조심스레 넘어가고 있었다. 몸에 아직 익지 않은 교복은 어딘가 낯설었고, 처음 마주한 학교 운동장과 커다란 교실은 금방이라도 우리를 삼켜버릴 듯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교문 옆 구석에서는 아이들 몇이 차렷 자세로 굳어 있었고, 노란 완장을 찬 선도부 형들이 작대기를 들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무어라 떠들어댔다. 그 장면만으로도 목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영택이와 나는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며 숨을 죽이고 교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야! 너희들, 이리 와봐.”

어디선가 터져 나온 굵은 목소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단숨에 묶어 세웠다. 왼쪽 팔에 ‘규율’이라 적힌 노란 완장을 찬 형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우리를 불렀다. 한 손에는 묵직한 몽둥이를, 다른 한 손에는 이름을 적는 듯한 수첩을 들고 있었다.


“이 자식들 봐라. 에리도 차지도 않았네.”

카쿠란이라는 검은 교복을 처음 입어본 우리는 ‘에리’가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그것은 천주교 신부의 로만칼라처럼 목을 둘러싸는 하얀 PVC 조각이었다.


“어허, 간뎅이가 부었네 부었어. 소매 단추가 두 개씩이나 없어.”

규율부 형들은 우리 주위를 천천히 돌며 위아래를 훑어본다. 단추가 몇 개여야 하는지, 후크는 어떻게 잠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우리는 그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그중 인상이 그나마 부드러운 형 하나가 나에게 묻는다.


“1학년 3반입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이… 이의준?”

형은 수첩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갑자기 묻는다.


“야, 너 누나 이름이 뭐야?”

이유도 모른 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규율부 형을 쳐다보며 왜 그러냐 물었다.

“이 새끼가 말하라면 말하지, 말이 많아.”

뒤통수에 따끔한 통증이 스친다.

나는 모기만 한 소리로 말했다.


“이… 의열입니다.”

그러자 그 형은 다른 규율부 형들 쪽으로 가서 한동안 수군거린다. 잠시 후, 그 형들은 나와 영택이에게 조용히 말을 한다.


“너희들은 들어가.”

그날 이후로도 등굣길에서 몇 번이나 제지를 당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나는 그대로 통과였다. 다른 아이들은 엎드려뻗쳐에, 궁둥이 타작에, 온갖 고충을 겪었지만 나는 늘 무사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 누나는 이 학교 여자부 규율 부장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여자부 일진대장이었으니, 동생을 건드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남자 규율부 형들조차 곤욕을 치를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 누나였지만 집에서 만큼은 늘 엄마처럼 다정하고 자상했다.


이제 나는 바랜 교복 대신 세월의 다른 옷을 입으며 살고 있다.

가끔 글을 쓰다 멈추는 순간마다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교문 앞에 서 있던 어린 나를, 아무 말 없이 지켜주던 그 얼굴.


누나,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아직도 누나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여전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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