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돌아온 이 병장
월남에서 돌아온 이 병장
까마잡잡한 얼굴에 날이 선 눈빛은 우리들 눈과는 달랐다.
큰형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움츠러들었다. 월남에서 큰형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은 반가움보다 낯섦을 먼저 데려왔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형님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놓여 있는 듯했다.
형님 주변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의 나로 써는 알지 못했다. 다만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던 이야기 속에서, 전쟁터에 다녀온 사람은 무언가 다르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살육의 현장에 오래 머물다 보면, 눈빛부터 틀려진다고 했다.
형은 귀국 휴가를 보내시고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월남은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다른 형들 뒤에 숨어 큰형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마을이 불타 사라졌다는 이야기, 시신을 훼손한 베트콩의 잔혹함, 비처럼 쏟아졌다는 고엽제, 거리마다 널린 시체들, 피비린내 속에서 먹던 밥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어린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무서움과 잔인함이 뒤섞여 등골이 서늘해졌다.
흑백사진 속에는 사지가 찢긴 시체들이 있었고, 야자수 아래에서 잠시 쉬는 군인들의 평온한 모습도 있었다. 넓게 펼쳐진 전쟁의 벌판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람들이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죽음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그저 큰형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했을 뿐이다. 이별의 의미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아직은 알지 못하던 때였다.
형은 휴가 기간 동안 집안일을 도우며 형제들과 시간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기총 시합이었다. 셋째 형이 분유 깡통을 올려놓고 오십 미터 거리에서 명중시켰을 때도 모두가 놀랐지만, 큰형은 전선을 지탱하는 노브애자의 작은 구멍을 정확히 맞혔다.
못 대가리만 한 그 구멍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크기였지만 큰형은 그것을 정확히 명중을 시켰다. 우리는 역시 역전의 용사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형은 틈만 나면 음악을 들었다. 누가 사왔는지,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를 LP 전축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부터가 신기했다. 형이 즐겨 들은 곡은 소야 곡이였는데, 그중에서도 솔베이지의 노래였다.
몇 번이고 같은 곡을 반복해 들으며 형은 깊은 회상에 잠기곤 했다.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으니,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낀 어떤 감정,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회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형이 생각날 때면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곤 했다. 음악은 그렇게 형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형의 눈빛에 서린 살기는 조금씩 옅어졌다. 환경에 익숙해진 탓인지,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날카로웠던 눈동자에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무서운 군인이 아니라, 자상한 큰형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보슬비가 내리던 어느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날 오전, 형은 부대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제 막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형은 이미 떠나 있었다.
나는 왠지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마루 한가운데 놓인 전축 앞에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던 형의 뒷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는 형을 생각하며 턴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렸다. 전축 바늘이 지직거리며 내려앉았고, 삐거덕거리는 마루 위로 솔베이지의 노래가 처량하게 흘러나왔다.
그날 이후로, 그 노래는 내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전쟁을 다녀온 한 형의 회상이 되었고, 형에 대한 그리움의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