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 집
에스키모 집
닷째 형은 어느 날 시멘트 블록의 바깥 틀을 하나 들고 왔다.
그 순간부터 겨울은 우리 편이 되었다.
낭가와 나는 근방에 쌓인 눈을 있는 힘껏 긁어모아 형에게 가져다주었다. 형은 틀 안에 눈을 가득 채우고는 발로 꾹꾹 눌러 다졌다. 이리저리 틀을 흔들어 공기를 빼내더니, 하나씩 눈 블록을 찍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블록들이 여름에 토마토를 심었던 자리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블록과 블록 사이는 부드러운 눈으로 메워 접착력을 높였다. 반나절쯤 지났을까, 우리는 마침내 에스키모 집 하나를 완성했다.
바닥에는 쌀가마니를 찢어 길게 깔았고, 문도 쌀가마니로 대신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뜻밖에도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밖은 영하 4~5 도를 오르내리는데, 에스키모 집 안은 영도 남짓이다. 무엇보다 바람이 막히니 체감 온도는 영상처럼 느껴졌다.
넷째 형에게 들었는지, 닷째 형은 대야에 찬물을 담아 에스키모 집 밖을 골고루 뿌렸다.
“왜 물을 뿌려?”
내 물음에 형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꽁꽁 얼어서 콘크리트 집처럼 단단해져.”
그 말이 어찌나 든든하게 들리던지.
그날 이후 나와 낭가, 그리고 막내는 그곳을 ‘본부’로 정했다. 나무 상자 두 개를 이어 붙여 의자를 만들고, 심심할 때마다 그 안에 모여 앉았다.
TV 영화 시리즈 컴배트를 흉내 내며 “본부, 본부”를 외치기도 했고, 동화책을 들고 와 「행복한 왕자」를 읽기도 했다. 어머니가 사주신 그림 성경도 그곳에서 처음 넘겨보았다. 에스키모 집은 우리만의 세계였고, 우리만의 집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오던 길에 아이들 몇이 눈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동네 아이들과 미군 아저씨들이었다. 아이들이 빨리 와서 눈을 던지라며 나를 부른다. 나도 책가방을 내 던지고 아이들과 합세해서 눈을 던졌다.
넘어지는 아저씨 목덜미에 눈을 퍼붓자, 아저씨들은 “기브 업, 기브 업”을 외치며 껄껄 웃었다. 우리는 그 뜻을 알고 있었다.
“와!”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이겼다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는 우리들 손에 시레이션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그 안에는 달달한 딸기 맛 비스킷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땡큐, 땡큐”를 연발했고, 아저씨들은 환하게 웃으며 부대로 돌아갔다.
나는 시레이션을 들고 본부로 돌아왔다. 본부 선반에는 새총, 구슬, 딱지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은 우리의 보물창고였다. 나는 비스킷을 그 위에 올려놓고 낭가와 막내를 불렀다. 마치 전리품이라도 얻은 것처럼 눈싸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비스킷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에 심부름을 다녀온 낭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빠, 본부에서 찌린내가 나.”
함께 가보니 에스키모 집 벽에 누런 자국이 번져 있었다. 누군가 밤중에 오줌을 싼 것이다. 나는 성질이 난 채 형들을 찾아다니며 범인을 따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셋째 형이 미안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자백했다.
“물어내! 물어내!”
나는 억울하고 속상해서 하며 형에게 대들었다.
형은 알았다며, 눈이 오면 그 부분을 파내고 다시 블록을 쌓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라는 눈은 오지 않고 봄을 재촉하는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 나는 점점 녹아내리는 에스키모 집을 바라보며 애를 태웠다. 힘들게 만든 우리의 공간이 사라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서쪽 벽이 무너져 내렸고, 에스키모 집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우리는 결국 본부를 포기하기로 했다.
넷째 형은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인지, 혹은 우리가 다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에스키모 집을 이단 옆차기로 차서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무언가가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그 시절의 겨울은 행복했다.
처음으로 가져본 우리들만의 집이었고, 낭가와 막내, 그리고 형들과의 어린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도 언젠가는 에스키모 집처럼 녹아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웃었고, 충분히 따뜻했으며, 그 행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오래도록 감사하며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