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뒤집을 것인가?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점점 초조해져 갔다. 동기들은 취업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는데 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도 늦게 들어갔는데 취업까지 늦어지니 엄마 얼굴 보기도 미안했다. 급한 마음에 이력서를 열심히 들이밀었다. 많은 곳 중에 나를 선택해 준곳, 그중에 가장 멀쩡해 보였던 회사. 나의 첫 직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회사는 내게 갑과 을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을의 자리에 있는 것도 속상한데 아버지 또래의 사장님이 노래방에서 부루스를 추자고 손을 내밀었는 땐 을의 을이 된 것 같아 비참해졌다. 멋지게 사장님 손에 하이 파이브를 쳐 드리고는 첫 회사와 안녕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을의 위치지만 마음은 갑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을 했고 일 년에 두 번 있는 유럽 출장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혜택이 많을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웠고 그에 따르지 못하면 인격비하의 직설적인 공격을 감당해야 했다. 그 고통이 심할 때는 아침마다 목줄에 묶여 끌려가는 개가 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할 때다.
“원래 남의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오는 돈은 다 힘든 거야. 그러니 좀 더 참고 다녀봐.”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에게 쉽게 포기하라고 할 수 없었을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여기서 그만둔다면 이 짧은 경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엄마의 말에 따라 어디를 가든지 다 힘들 꺼라 나를 다독이며 그런 시기들을 넘기고 일을 지속해 왔다. 후로 회사를 두어 번 더 옮기면서 여러 번의 고비들이 있었지만 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20년간 지켜 왔다. 그 시간들이 모두 힘들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즐거움 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로 인해 매달 달콤한 월급을 받았고 그 돈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웠으니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마흔을 넘어서기 3~4년 전부터 내 안에는 스멀스멀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사회에 들어오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그 생각들-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잘할 수 있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지만 이 생각들의 답은 쉽게 나오는 것들이 아니었다. 답을 찾고자 인생에 관한 책, 자기 개발서, 경제 관련 책들을 읽어 보기도 했다. 영어 공부를 좀 더 해볼까? 관심 있던 인테리어 공부를 해볼까? 요가 자격증을 따서 어르신들 운동을 시켜 볼까? 고민할수록 하고 싶은 일은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 내 질문의 답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그만둘만한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관성의 성질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관성을 멈추게 해 준 것은 코로나였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내가 다니던 회사는 가파르게 내리막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더 회사에 남아 있을 명분이 점점 사라졌다. 함께 했던 젊은 친구들이 회사를 떠나갈 때 붙잡지 못했다. 남아서 견디면 좋은 때가 다시 올 거라는 희망을 줄 수 없었다. 그들을 떠나보내고 나도 정리를 했다. 그전까지는 몇 번을 붙잡던 대표님도 미안하다며 퇴사처리를 해 주셨다. 이게 순리인 듯 억지 없이 퇴사를 했다.
집에 있으니 일하는 동안은 못했던 아이들 등하교를 함께 하고 하교 후 간식도 챙겨 준다. 회사 다니는 동안은 차로만 움직여서 하루 걷기가 2000 보도 안되었는데 차 없이 동네를 다니니 하루 만보는 거뜬했다. 오전에는 운동도 조금씩 하게 되었다. 혼자 카페에 가서 한두 시간씩 책도 보고 멍도 때려 보곤 했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던 탓인지 나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다시 일을 못하게 되는 게 아닐지, 다시 돌아갈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성장해 가는데 엄마인 나는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일했던 분야로 돌아가야 하나? 내 걱정은 다시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이 들수록 무언가를 집중하고 공부하기보다는 헛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유튜브를 멍하게 보고 있거나 SNS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 낭비의 시간 속에 내게 훅하고 들어오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소통전문가 김창옥 씨의 영상이었다.
“오겹살을 불판에 올려놓고 굽고 있습니다. 그 오겹살은 언제 뒤집습니까? 오겹살은 한쪽 면이 다 익었을 때 다른 면으로 뒤집어 굽습니다. 사람들이 힘들면 내 삶이 뒤집혔어. 끝이야.라고 말합니다. 그건 한 면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다른 면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 김창옥 씨도 힘들었던 시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쉼이 필요한 시기 제주도에 가서 오겹살을 굽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 이거야! 그래 난 한 면이 다 구워진 거야. 이젠 다른 면을 구워야 해.’ 생각지도 않게 이 영상 하나로 나의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천국과 지옥은 다 내 맘 안에 있다더니만! 지금의 불안한 마음은 갖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의 새로운 판을 시작하자. 지금껏 잘 달려왔고 잘 견뎌 왔다. 나를 토닥여 준다. 물론 이것으로 나의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낸 건 아니다. 아직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한지를 말이다. 20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그때에는 관심 없었던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본다. 지금은 그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만 찾았다. 어떤 일들로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찾는 것은 다음 과제다. 그 과제를 해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사진 출처: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