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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로 Nov 03. 2023

머리카락 말고 마음이 펴졌다.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머리에 비닐을 씌우고 앉아 정수리에 열을 받고 있는 상황이 우습다. 이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 행복을 느낀다. 볼륨매직이라는 최첨단 테크놀로지 기술은 악성 곱슬인 사람들에게 은혜와도 같은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단점 빼고는 말이다. 장시간 동안 앉아있으면 휴대전화를 들 수밖에 없다. 릴스, 쇼츠 등 영상을 보게 되는데, 도파민이라는 마약이 엄지가 닳도록 스크롤을 내리게 한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곧게 펴있다.


미용실뿐만 아니라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이것까지만 봐야지'했는데 빠져나오지 못해 늦게 잠든 적도 많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일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짧은 콘텐츠에 중독되면 글을 읽거나 장시간동안 집중하는 일이 어렵게 된다. 얻는 즐거움에 비해 잃는 것이 곱에 곱절은 많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미용실에 갈 때 손바닥이나 겨드랑이 사이에 책 한 권을 끼워 넣는다. 처음엔 척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어제는 급하게 예약을 해서 책과의 동행은 하지 못했다. 전자책이라도 보여줄게 하고는 손바닥과 겨드랑이를 달랬다. 머리를 다듬고 본격적으로 매직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열판 밑에 앉았다. 눈앞에 대부분 잡지로 채워진 책꽂이가 보였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나도 있어요" 하고 책 한 권이 말하고 있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는 책들을 보면 표지부터 난리다. 그런 책을 많이 봐서인지 심플한 흰색 표지가 눈에 띄었다. 아니면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누구이며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무얼까? 궁금해졌다.


평소 자기 계발 책을 많이 읽는다. 산문과 시는 1년에 한 권 볼까 말 까 할 정도로 친분이 없다. 하지만 산문 형식의 이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는 건 '이유가 있겠지' 하며 운명론자의 손을 들었다. 산문 형식의 글은 기억에 남지 않은 듯해 잘 읽지 않지만 운명을 따라 머리가 식기 전까지만 친해져 보기로 했다. 저자는 법정. 매우 유명한 분이지만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간결하고 나서지 않는 듯한 문체가 계속 글을 읽게 했다. 뼈를 때리며 "이리 와 이렇게 하면 성공해"라고 말하는 자기 계발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좋았다.


10페이지 정도 읽다가 잠시 내려놓고 나무위키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찾았다.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설명은 생략하겠다. 와닿은 건 "출판되는 모든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2010년에 발행이 중단됐으니, 이 책은 최소 13살은 된 친구였다. 역시, 운명의 손을 든 이유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명분을 확실하게 만든 뒤에 이어서 책을 읽었다. 많은 내용을 읽지 못했지만 한 구절이 생각회로를 돌려주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늪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내용과 맥락이 이어진 구절이었다. 나는 평소에 어떤 말을 되풀이할까? 지난 일에 대한 후회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를 바꿀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그럼 이 늪에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는 교과서라 생각하고 매일 주어지는 오늘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오늘을 가장 열심히 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질문과 답을 줄 세웠다. 한 문장이 오랜 시간 나를 돌아보게 했다.


 2019년 기준, 미술관에서 한 그림 앞에서 머무는 평균 시간이 8초라고 한다. 과거에는 12초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인간의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4년이 지난 2023년 우리의 집중력은 8초보다 더 떨어져 있지 않을까? ('도둑맞은 집중력' 참고)


스크롤만 내리면 쉽게 볼 수 있는 영상에 빠지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짧은 콘텐츠일수록 더하다. 이런 것들에 중독되면 짧게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는 힘들어한다. 그래서인지 한 소절을 가지고 오랜 시간 생각해 본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머리를 펴기 위해 가서는 마음을 폈다. 하루가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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