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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Aug 23.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남귤북지(1)   


    중국 전국시대 한 나라의 재상이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웃나라 왕은 재상을 크게 반기며 귤을 내왔다. "우리나라의 보배이니 마음껏 즐기십시오." 껍질을 벗기니 상큼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얇은 포막에 쌓인 과육을 베어물자 달큰한 과즙이 입 안에 퍼졌다. 재상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귤을 몇 개나 더 집어먹었다.


    재상은 일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귤나무 묘목을 몇 그루 얻어다가 자신의 집 마당에 심었다. 물과 거름을 듬뿍 주며 정성스레 귤나무를 키웠다. 마침내 가지마다 풍성하게 열매가 달렸다. 재상은 잔뜩 기대를 품고서 열매를 한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웬걸, 열매는 쓰고, 떫기만 했다. 재상은 "에잇, 이 놈의 탱자!" 하면서 바닥에 열매를 퉤- 뱉었다. 남귤북지. 남쪽에서는 귤이었으나 북쪽에서는 탱자라는 말로, 수질과 풍토에 따라 과실의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사람 역시 주위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사자성어이다.




유인성(가명),  죄명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피의자를 책상 앞에 앉히고 조사를 이어갔다. 유인성은 일명 차털이 범행으로 구속된 사람이었다. 차털이는 주차되어 있는 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현금이나 귀중품을 훔치는 범행이었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한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차 안에 돈을 두고 다닐까 싶지만 주차요금이나 도로통행료를 계산하기 위해 차 안에 잔돈을 보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차털이 범행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유인성은 절도 범행으로 수 년 동안 몇 번씩 옥살이를 하고, 얼마 전에 출소했음에도 또다시 범죄의 늪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CCTV영상에 범행장면이 그대로 찍혀 있었고, 유인성도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별다른 추가수사 없이 유인성을 기소했다. 고백하자면, 말 그대로 일상다반사인 범죄이기도 했고, 잡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 유인성이라는 이름 석 자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나와 생년월일이 비슷해서 나이도 거의 같은데 왜 이리 인생을 허비하며 살까, 한심하다라는 생각을 스치듯 떠올린 정도였다.


    몇 달 뒤 공판실로 부서이동을 했다. 검사는 전담에 따라 크게 수사검사공판검사로 분류할 수 있다. 단어 그대로 수사검사는 수사를, 공판검사는 공판을 담당한다. 이처럼 검사를 나눈 이유는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서다. 예컨대 검사 1명이 수사부터 공판까지 전부 담당한다면 처리하는 개개의 사건마다 재판일정은 각양각색이므로, 그 검사는 수사도, 공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사검사는 수사만, 공판검사는 공판만 담당하게끔 역할을 나눈 것이다. 물론 중요한 사건은 수사검사가 공판단계까지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를 직관이라고 부른다.


JTBC 드라마 '언터쳐블', 재판을 준비 중인 공판검사 서이라(정은지 분). 법정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검사는 공판검사다.      [출처 : JTBC 홈페이지]


    공판검사는 공판 이외에 형의 집행 업무도 담당한다(형의 집행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설명하였으니 참고 바랍니다). 한창 재판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  집행정지 담당인  계장님이 찾아오셨다. "검사님,  집행정지 신청 들어왔네예."  집행정지는 징역이나 금고와 같은 자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피고인이 중병에 걸리는 등의 사유로 수형생활이 어려운 경우에 일정 기간 동안  형의 집행을 멈추는 제도이다.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집행정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검사가 한다. 수형자들이 간혹 수형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한 꼼수로  집행정지를 신청하기도 하기에, 이번에는 누가 꾀병을 부리는건가 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신청서를 넘겨보았다.


대상자 유인성, 병명 위암 4기(췌장 및 간 전이)


    낯선 이름이었다. 무슨 일로 수감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 범죄전력 부분을 읽었다. 차털이 범행을 하여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판결문에 적혀있는 범죄사실을 읽어 보니 문체나 단어 선택이 익숙했다. 판결문 첫 머리로 눈을 돌려 기소한 검사 이름을 찾았다. 검사 뚝검(기소). 그제야 몇 달 전 일상처럼 처리했던 절도 사건의 주인공, 차털이범 유인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교도소에 넣은 사람을 내가 풀어주게 되는건가.


계장님, 임검 준비 해주세요.


    박 계장님과 함께 유인성이 입원해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임검이란 형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검사가 직접 대상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를 말한다. 유인성은 병실 침대에 혼자 누워있었다. 배가 아픈지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사복을 입은 교도관들이 병실과 복도, 층 출입문에 앉아 삼엄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고, 유인성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침대 난간에 묶여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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