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어른 위한 따뜻한 성장 동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복잡한 관계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일이다. 깨지고 무너져도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한번 진창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인생에 반해 수학은 참으로 정직하고 명쾌하다. 조금씩 숫자와 친해지고 문제를 이해하다 보면 명확한 답이 내려져 조금은 반갑기까지 하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역시 그렇다. 정직하고 올곧게, 별다른 기교가 있거나 대단한 웰메이드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마음에 편안함을 남기고 정직함과 우직함을 심어놓는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 사진 쇼박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천재 북한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탈북 후 남한에 와 정체를 숨기고 고등학교에서 경비원 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수학을 포기한 한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되고, 두 사람은 수학과 함께 서로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극복하고 연대해간다.
앞서 설명한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수학은 사실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물론 외피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의 동력은 수학이지만, 영화에서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수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우리네 인생과 달리, 정직하고 명쾌하다는 수학의 속성에서 영화의 메시지가 비롯된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전하는 메시지란 어쩌면 지루하고 식상하며 단순한 이야기다. 영화는 과정을 도외시한 채 결과만을 위해 내달리는 사회를 향해 잠시 멈춰 주변을 돌아보라 말한다. 도중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직하고 우직하게, 우리 모두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삶의 근원적 태도에 대해 펼쳐 보이는 것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 사진 쇼박스
그렇기에 영화는 얼핏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청춘 성장 드라마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감동은 결국 어른들을 향한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인간성이 마모되어가는 우리 삶에 한 편의 따뜻한 동화로 위로를 전한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 우리가 바라고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영화는 이학성의 성장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이는 우리가 수없이 들어본 이야기며, 메시지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수학 공식을 시각적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려내거나 ‘파이송’이라는 피아노곡을 만드는 등 감각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학성이 학생과 수학을 공부하는 버려진 과학실 역시 마찬가지다. 따뜻한 조명과 소품으로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지 않고 부드러운 동화를 스크린에 수 놓는다.
허나 진부한 메시지를 따라 영화의 전개와 구성, 캐릭터 사이 관계성과 결말까지 식상한 것은 아쉽다. 외피를 맡고 있는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구시대 청춘 성장 드라마의 결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과 달리 정직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그리려 한 것은 알겠지만,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전개로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지 금세 예측할 수 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 사진 쇼박스
요컨대 순수하다 못해 어쩌면 유치하다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순한 맛의 영화다. 오글거리는 대사와 장면도 다수 있을 뿐더러, 현실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동화에 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여운과 위로는 편안함을 준다. 복잡한 우리네 인생과 달리 훤히 보이기에 더욱 편안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올곧게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긴 어려워도, 누군가 함께 올곧아 보자 손을 맞잡아 주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영화 기본정보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고등학교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대상 1호에 오른 이학성.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달라 조르는 수포자(수학 포기자)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는 이학성. 그러나 삶의 회한만이 가득하던 그 역시 지우를 통해 뜻밖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개봉: 3월 9일/ 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박동훈/출연: 최민식, 김동휘, 박병은, 박해준, 조윤서/제작: ㈜조이래빗/배급: ㈜쇼박스/러닝타임: 117분/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