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스무비 Mar 02. 2022

누런 녹물에 몸을 맡기는 이의 건조한 표정에 대하여

리뷰: ‘축복의 집’ 누런 녹물에 몸을 맡기는 이의 건조한 표정에 대하여

사회 변두리, 모두의 무관심에 버려져 하루를 버텨내기가 과업인 이들이 있다. 영화 ‘축복의 집’은 바로 그런 이의 발걸음을 따라 다닌다. 얼마나 고난인지 구태여 설명하거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진 않는다. 그저 건조하고 담담하게 누런 녹물에 몸을 씻는 이의 표정을 담아 보는 이의 마음 한 편을 송곳처럼 찌른다.

영화 '축복의 집' 스틸. 사진 필름다빈


영화 ‘축복의 집’(감독 박희권)은 밤에는 공장에서, 낮에는 식당에서 쉼 없이 일하며 살아가는 해수(안소요)가 어느 날 일을 쉬고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계획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상, 제24회 토론토릴아시안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하루를 살아가기 조차 버거운 이들의 삶을 엿본다.

여느 독립영화와 같이 ‘축복의 집’은 담담하고, 조용하다. 음악은 물론이고 대사 조차 많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런 답답함은 카메라의 앵글에서도 기인한다. 영화는 각박한 하루를 살아가는 이의 손과 얼굴, 뒷모습 등을 비추는데 클로즈업을 주로 유지한다. 카메라가 설사 뒤로 떨어질 지라도 결코 배경이 많이 나오지 않고, 그럴 때조차 주변은 사방이 막혀있거나 비루한 환경이다.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다. 무거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담은 만큼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답답함과 무거움이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되레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알고서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었던 모습들이 가감 없이 들춰진 이유다.

영화 '축복의 집' 스틸. 사진 필름다빈


별다른 설명 없이, 장황한 변명 없이 영화는 해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린다. 그의 계획은 얼핏 섬뜩하고 잔인하지만, 순간의 충격일 뿐 관객은 금새 그에 동화돼 사연에 대한 공감과 사회를 향한 분노가 인다. 상황을 이용해 뒷돈을 챙기는 경찰, 내일을 걱정할 필요 없는 이들을 위해 집마저 부숴내는 사회, 동사무소 직원의 한숨으로 사라지는 허망한 삶. 지독히도 건조하나 그만큼 사실적인 이야기에 숨이 막힌다.

극 중 해수는 말이 없다. 그의 처지에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오히려 약점이 잡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표정마저 가리기 위해 마스크도 쓴다. 그는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동생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을 드러내봐도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사회의 빈정거림과 무관심이었기에 그의 방어기제는 공고하다. 우리 사회는 과연 해수의 마스크를 벗겨낼 수 있을까.

영화 '축복의 집' 스틸. 사진 필름다빈


#영화 기본정보

아침에는 공장에서,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해수는 어느 날, 먼 동네 의사에게 시체검안서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병원과 집, 식당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서류 처리를 이어가는 해수. 불안한 표정에 말 한 마디 없는 그의 수상한 계획은 과연 무사히 끝맺음을 할 수 있을까.


개봉: 2월 24일/ 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박희권/출연: 안소요, 이강지, 김나영, 김재록, 이정은, 나종기/제작: ㈜고앤고필름/배급: ㅍㄹ름다빈/러닝타임: 79분/별점: ★★★

작가의 이전글 고민 없이 반복되는 디스토피아의 피로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