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대 너머에’ 기억과 존재의 미로에서 허우적
박홍민 감독 신작 ‘그대 너머에’가 개봉 소식을 알렸다.
영화 '그대 너머에' 포스터. 사진 농부영화사
영화 ‘그대 너머에’는 존재와 기억의 미로 속에서 혼란을 겪는 경호(김권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물고기’(2013), ‘혼자’(2016)에 이어 다시 한번 박홍민 감독의 내밀한 세계관이 펼쳐진 작품으로, 존재와 기억, 망각을 다루며 자아에 대해 탐구한다.
얼핏 보아선 이해하기 어렵다. 명확한 줄거리도, 캐릭터도 없다. 모든 장면에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깊게 고민해봐야 할 정도로, ‘그대 너머에’는 일반 관객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둔 작품이다. 예술 영화라는 장르를 고려했을 때 조차 그렇다.
영화는 박홍민 감독의 전작이 그러했듯 형식과 서사 구조의 파괴를 즐긴다. 초밀착 접사촬영을 통해 담은 개미들의 움직임으로 시작한 카메라는 변화를 최소화한 채 인물과 배경을 담는다. 동선은 얽혀있고, 시간대는 뒤죽박죽이다. 질서정연한 모든 것을 파괴하며 애매한 뉘앙스만을 풍기는 이미지가 뒤섞이니, 낯설다 못해 불편하고 황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영화가 경호의 시점으로 흘러간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경호가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하지 않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대학 동창 인숙(오민애)의 이야기가 기실 그 자신의 이야기로 비춰지기도 하고, 인숙의 기억을 헤매는, 경호의 딸 일지도 모르는 지연의 불안감은 경호의 광기로 이어진다.
때문에 누군가는 ‘그대 너머에’를 지나치게 추상적인 영화로 바라볼 수 있다. 관객과 호흡하지 않는, 감독 자신만을 위한 영화라 평해도 어색함이 없다.
그러나 영화를 차분히 음미하다 보면 독특한 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논리정연 말로 옮겨진 생각이 이미지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관념 그 자체가 곧장 스크린에 옮겨졌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환상 속에서 분열하는 자아 속으로 영화는 끊임없이 파고든다.
영화의 후반부, 미로 같은 달동네를 롱테이크로 비추는 장면에서 목소리만 들리던 인숙은 개미굴 같은 미로 속에서 불쑥 나타난다. 긴밀하게 담아낸 개미와는 달리 인숙의 헤맴은 극도로 먼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대 너머에’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배치와 대치, 아이러니로 이미지를 쏟아낸다. 어지러워야 할 터임에도 이유 모를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엉켜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흐트러진 것의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보기에도, 느끼기에도, 어렵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다. 혼란스럽지만 자연스럽고, 괴상하지만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