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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Oct 08. 2021

‘푸른 호수’ 미국 사회 향한 정직한 일침

[26th BIFF] ‘푸른 호수’ 리뷰…미국 사회 향한 정직한 일침

지난 3월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80년대 낯선 땅으로 이민간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미나리’(감독 정이삭)에 이어,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의 아픔이 담긴 또 한편의 작품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저스틴 전의 ‘푸른 호수’가 그것.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입양아로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아픔과 고충을 담아 관객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푸른 호수'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내 이름은 안토니오 르블랑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돼 안토니오 르블랑(저스틴 전)이라는 이름을 얻은 한 남자. 그에게는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사랑스러운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가 전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억울한 상황에 휘말려 경찰에 붙잡힌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지고,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게 된다. 30년 넘게 산 미국에서 불업이민자의 꼬리표가 붙어 강제추방 위기에 처한 안토니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지만, 누구도 그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푸른 호수'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의 플롯은 간단하다. 세 살에 미국에 입양 돼 삼십 년이 넘도록 미국에서 살았지만, 서류 미비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안토니오가 고군분투함에도 결국 강제추방 당하는 이야기다. 허나 ‘푸른 호수’에 담긴 아픔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안토니오의 삶에 빗대어, 법의 허술함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수많은 입양아들의 처절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들춰진 이유다.

어린아이가 던진 돌에 개구리가 쉬이 죽어버리듯, 평화롭기만 했던 안토니오의 매일은 너무나 쉽게 산산조각 난다. 쾌활하기 그지없는 백인 남성 경찰의 철없는 행동은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비극의 침통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영화는 변화구 없이 천천히, 그러나 정직하고 묵직하게 그네들의 아픔을 스크린에 그린다. 비록 화려한 액션도, 긴박하게 흘러가는 짜릿한 이야기도 없지만, 진득하게 숨을 조여오는 비극의 호수는 어느새 보는 이의 마음에 가득 찬다.

영화 '푸른 호수'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고 마음을 뒤흔드는 동시에 ‘푸른 호수’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쉴새 없이 꼬집는다. 딸과 결혼했음에도 여전히 안토니오를 “미국인은 아니지”라고 말하는 장모, 30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입양 시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로 규정하는 허술한 법 체계, 같은 백인 남성은 존중하지만 아시안은 철저히 무시하는 경찰 등 영화에 담긴 이 가혹하고 처절한 현실은 과장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허나 무엇보다 ‘푸른 호수’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회상하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기억이다. 뿌리에 대한 그리움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본능, 입양을 보낸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동시에 한없이 떠오르는 그의 자장가.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미장센으로부터 관객은 입양인이 처한 현실 너머 그네들의 마음 속 내재한 불안과 고통, 슬픔과 한을 마주하게 된다.


개봉: 10월 13일/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감독: 저스틴 전/출연: 저스틴 전, 알리시아 비칸데르, 시드니 코왈스키, 마크 오브라이언/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러닝타임: 117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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