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늘 아프다. ‘너를 믿었는데, 어떻게 나에게’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아프다. 로마황제 카이사르도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했다는 야사가 남아 있을 정도다.
타인에게 배신당하는 것도 이렇게 아픈데, 스스로에게 배신을 당하면 얼마나 더 아플까?
대표적인 셀프 배신은 ‘노력’이 한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노력의 결과가 오히려 실패를 가져오기도 한다. 피, 땀, 눈물을 다 들여서 애를 썼는데 쓰디쓴 결과를 맞이해야 할 때 어떤 때보다 뒤통수가 아프다. 칼에 찔린 듯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데 노력이 배신을 했다고 하더라도 노력했다는 자체의 느낌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쓰고 몰입하면서 느낀 기분은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하더라도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되어서 다음의 노력을 위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정말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늘 배신을 한다. 어떠한 좋은 결과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게으름으로 시간을 무력하게 보냈을 때 스스로가 느끼는 기분마저도 비참하다. 후회와 미련만 남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게으름을 가볍게 여긴다. 오늘 못 한 거 내일 하면 되지, 미래의 내가 언젠가는 하겠지 하는 식으로 모른 척을 한다. 노력도 배신을 한다는 이유로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며 외면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노력의 배신이 주는 값과 게으름이 남긴 값은 비교자체가 불가하다. 해보고 안 된 것과 해보지도 않고 어떠한 결과도 남기지 못한 것은 다르다. 감히 누가 해도 안 될 거라고 단정한단 말인가.
노력의 배신을 당해본 사람만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승리를 거둔다. 오늘의 나는 노력에 배신당했지만 1년 뒤, 10년 뒤의 나는 노력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게으름은 평생 동안 나를 루저로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