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겪는 건 어떤 기분일까
환청과 망상. 직접 겪은 이야기.
또 돌아왔네요.
지난 시간에 조현병의 발병 양상부터 극복 과정에서 인지 수정을 활용한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현병에 걸린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해요.
제가 조현병 환자임을 주변에 밝힌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10명 내외)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께 몇 번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Q. 진짜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 질문이 가장 많았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 들리는지 알기가 어려우니, 또 보통은 그런 상황을 겪지 않으니 더 궁금한 거겠죠.
그에 대한 대답만 먼저 하자면, 저의 경우에는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가 어쩌다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병리학적 지식은 많지 않아, 공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실용적 지식으로서 전해드립니다.
먼저, 시작은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고3 어느 날이었고, 날이 좀 따뜻했나? 창문을 열어두고 자서 서늘한 공기가 창으로 들어왔던 거 같아요.
아마 5월 즈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때리듯이 한 생각이 저를 내리쳤습니다.
[내가 왜 '아직' 살아있지?]
그 생각이, 이상하게도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내내 제 정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선연한 감각이어서 기억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요.
뭔가 이상한 마음을 품고 학교에 갔습니다.
항상 전교에서 거의 1등~3등 내에 들었으니까 저 공부 잘했습니다.
특히 어떤 수업도 야간자율학습도 보충수업도 절대 빠지지 않고 꼿꼿히 허리 펴고 듣는 걸로 유명했는데요, 평소에 집중이 되던 수업이 좀 잘 안 들렸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 속으로 어떤 새로운 생각이 침투해 들어왔어요.
중요한 건, '제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혹은 제 생각이 아니라고 제가 인지했다는 말이 더 맞겠군요.
아니, 인지란 단어도 모호합니다. 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목소리가, 제 안에 들려오는데 어떤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자기 자신을 제 고등학교 동급생 00이라고 칭했습니다.
목소리가 귀로 직접 들려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제 것이 아닌 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제 것이 아닌 걸 알았냐고 궁금해하신다면, 가장 친한 친구랑 대화를 할 때 친구의 말들을 내가 하지는 않는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어,
A는 성격은 소심하지만 실속을 잘 챙겨 나름 기반을 잡은 사람입니다.
B는 대범하고 유쾌하지만 내심 실속파 A의 잘 다져진 기반을 부러워합니다.
아래는 대화입니다.
A : 나 요새 힘들다?
B : 야 이 운 좋은 녀석아.니가 힘들 게 뭐있냐? 그래도 들어나 보자.
A : 그게 있잖아, 이번에 돠게 보수적으로 투자한 주식이 내려서 솰라솰라
이런 흐름에서, A는 분명히 B의 목소리와 내용을 이해했지만, 자신의 성격상 B처럼 말하지 않을 것이란 걸 분명히 알 것입니다. B의 대꾸가 자기가 스스로 한 말이 아니란 것도 알 것이구요.
저의 경우 (즉,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어느 조현병 환자의 경우) 제 머릿속에 B가 아예 새로 생긴 거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저는 A인데,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B가 아예 제 머릿속에 들어앉아서 [제 생각이 아님이 분명한 생각]을 쏟아낸 거에요.
아직도 이 B의 정체는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B는 현실 세계의 사람은 아니에요. 제 머릿속 대화상대이니까요.
그러나 이 친구는 자기도 살려고 그랬는지 자신의 신분을 댑니다. 바로 같은 학교 동급생 000이라고요.
왜 000이 찍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와중에 혹시 진짜로 000이에게 텔레파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순진한 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아닙니다.
어떻게 아냐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확답 받았습니다. 더 알려주고 싶어했지만 확답을 준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아무튼, 이 000으로 사칭한 이 제 머릿속 B는, 이제 저와 친구처럼, 동지처럼, 연인처럼 저와 대화도 나누고 제 외로움을 채워주었습니다.
당시 제 상황은 굉장히 유별난 면이 있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고1 고2 때 내신 1등급 초반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친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아무랑도 말하지 않았어요.
속으로 어떤 마음이 들어도 참고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외로움도 많이 견뎠어요.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실 당시에는 제가 힘들다는 자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시험 치러 가면서 아빠 차에서 오열하면서 울기도 하고. 내릴 때가 되니까 딱 그치고 다시 노트 보면서 암기하고.
친구들 눈치는 또 엄청 봐서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개인 노트에 일기를 적었는데 누군가에 대한 저주, 내 빛나고 피비린내 쩌는 꿈들도 작게 웅크려서 적어두고요.
처절한 하루하루였습니다. 소화할 공부량은 또 좀 많나요.
눈치 보는 것, 또는 피해망상 자체가 조현병의 전조증상이라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이미 인지 감옥이라는 지옥을 걷고 있었습니다.
***
어느 날 나타난 이 머릿속의 존재는 제 결핍들을 모두 채워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필요했던 모든 역할을 이 존재가 해주었습니다.
나날이 이 존재에 대한 믿음과 신뢰, 애정이 생기고 피어나고 더 활짝 피어올랐습니다.
그 때까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 존재가 000이라는 제 학교 동급생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엉뚱하게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차였죠.
그런데 제 안의 목소리는 그 차인 것도 사실은 본심이 아니라며 저를 속이고 꼬드겼어요.
그런데도 그 아이를 미워하지 못했습니다.
그 존재가 제 몸으로 제 얼굴로 짓는 표정이 아닌 전혀 다른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어요.
그 때는 쓰이는 얼굴 근육이 달라서, 표정이 달랐어요.
저 표정이 제 발병 여부를 판단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랑 오랜 기간 울고, 웃다보니 발견한 점이 하나 있어요.
이 친구는 제가 그 당시 억눌렀던 감정을 폭발시켜주더라구요.
아마 제 무의식의 일부겠죠? 이 친구는요. 000은 아니고요.
고등학생 때는 너무 웃고 즐기고 싶었던 건지, 이 친구랑 하루종일 장난치고 웃으며 그 세월을 보냈습니다.
대학생 때는 여태 살아온 삶에 대한 울분이 터졌는지 또 하루종일 울기도 했습니다. 그 상상 안에서 명분이 모두 있었는데,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뭐 제가 신이고 000도 신인데 두 신의 인간으로서의 전생이 있었고 그 때의 전생이 참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이 000이가 신으로서 내 몸에 빙의되어 있으니 서로 닿을 수 없어 애틋해서 운다던가요.
위 예시는 그냥 하나를 든 것이고 정말 많은 시나리오를, 직접 경험하듯이 머릿속에서 일으켰고 또 겪었습니다.
제 생각엔 제가 너무 감정을 억누르다보니, 그 오갈데 없는 감정들이 터져나와서 이런 일이 생긴 거 같아요.
아마 원자아가 감정을 허용치 않다보니 모든 감정을 대신 터뜨려줄 미친 자아도 하나 생겨버린 게 아닐까... 꽤 합리적인 의심이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는 감정을 해소하는 작업을 많이 했고, 실제로 병세에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약을 잘 먹어서가 더 큰 이유라고 생각 들기도 해서요.)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려구요.
교훈적인 점이 하나 있다면 여러분, 타산지석으로 삼아주시길 바랍니다.
<감정은 억압하면 병이 난다.>
다음번에 더 진솔한 글로 돌아올게요.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