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된 집에서 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어지러웠다. 학교에 가기 전 어릴 때는 단칸방에 살았다. 집이 좁아서 어지러운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는 단칸방에서 방 두 개로 갔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방 3개 아파트로 갔지만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분양받은 아파트라 나만의 공간에서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방에서 사는 모습을 꿈꿨지만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때는 방 4개인 50평대 아파트에 살았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부모님의 상황을 생각해 보니 집이 어지러운 상황이 이해가 된다. 집안살림을 책임지는 나의 어머니는 2남 2녀 중 장녀다. 외갓집의 경제 사정은 어려웠다. 아들 딸 구분이 있는 시대이고 장녀로서 가정 경제도 함께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시며 낮에는 화장품을 팔러 다니셨다.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 성장하셔서 가난 탈출에 대한 욕망이 크셨던 것 같다. 집에 있는 무엇하나 버리시지는 못하시고 외부에서 물건을 모으는 데 익숙하셨다. 나의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학년이 바뀌어도 어머니께서는 책을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 책을 침대 밑에 다 넣어 보관하셨다. 언젠가 볼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본 기억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유행 지난 옷들, 소품들, 그릇들, 1회용 용기까지 버리시는 법이 없었다. 아껴 쓰고 모으고를 무한반복하셨다. 공무원 아버지의 외벌이 수입인 것을 감안하면 큰 부를 이루셨다. 그리고 그 부를 자식들 손주들에게 베풀어 주셨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정리에 대한 욕구나 습관은 없으셨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살만했으나 지금도 어머니는 아끼고 모으는 것에 익숙하시다. 정리하고 버리는 게 힘들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나에게 정리가 안된다고 좀 치우고 야단을 많이 치셨다. 그렇다고 본인께서 정리를 실천하시거나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시지는 않으셨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집안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여를 하시지 않으셨다. 지금 보면 이상하지만 베이비 부머 세대에서는 많은 가정이 그러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어지러운 집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깨끗하게 해 놓고 살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그 공간에서 정리된 공간에서 아늑하게 살고 싶었다. 군에 입대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가질 기회가 생겼다. 장교 생활을 했기에 독신자 숙소를 제공받았다.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깨끗했던 것 같다. 물건도 군복과 생필품 말고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군 생활이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고 월급으로 옷도 사고 컴퓨터도 사고 이것저것 샀다. 순식간에 어지러운 방이 되어 버렸다. 소박하게 사는 전입 동기를 보면서 나 역시도 부모님처럼 소유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퇴근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방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만 자는 방이 되었다. 물건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군대 전역할 때 PX에서 파는 술을 다 마시지도 못하면서 몇 박스나 사서 트렁크에 싣고 내려온 기억이 난다.
결혼 후에는 진짜 독립생활이 시작되었다. 국민 평형 신축급 아파트에서 모든 것을 새것으로 시작했다. 둘이 살기에는 아주 넓은 집이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집이었다. 살면서 물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맞벌이를 하니 경제적 결핍은 덜 해 물건을 많이 샀지만 퇴근하면 지쳐 집안을 정리하거나 치우기 위한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몇 달 보냈더니 예전에 내가 어지러워서 별로 안 좋아했던 부모님 집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정리 정돈해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 신혼집에서 2~3년 살고 40평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역시나 패턴은 반복되었다. 브랜드 아파트에 정말 예쁜 집이었는데 살면서 또 물건들에 둘러 쌓이게 되었다. 부모님의 문제도 아니고, 집 크기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나의 생활방식 문제였다.
해결책은 나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