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기관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3

가방 매고 밖으로 / 백문이불여일견

by 랄라이








책 육아를 시작하니

책에 관련된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가야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가 훨씬 수월하긴 하지요.


그러나

남편은 주말에도 일하는, 하루도 쉬지 못하는

자영업자였습니다.



어쩌다 일이 일찍 끝나

몇 시간 시간이 되어

어디라도 나가려 하면

어디든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구경을 갔는데

아이도 저희도 사람 구경만 하고, 줄 서서 기다리다가

오기 다반사였습니다.




일에 시달리다가 겨우 시간을 내준 신랑도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애쓴 저도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았더니

아이와 저에게 주어진 것은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일 낮시간엔 어딜 가나

우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방을 메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운전을 못합니다.


아이를 혼자 데리고 나가려면

유모차에 짐을 바리바리 싣고 가야 합니다.


숄더백은 귀찮을 뿐이고요

두 손과 팔이 자유로운 백팩이 최고입니다.



백팩 안에

아이 여벌 옷이며 간식이며 챙겨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밖으로 나갔습니다.




발길이 가는 곳으로 갔습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누구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누군가의 시간에 맞출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집 앞 공원으로 가 땅을 파며 놀다가

간식 먹고 들어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 대공원으로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평일 그것도 화수목 요일은


어디든

저희 둘 뿐이었습니다.



넓은 공원도

우리 둘이.


넓은 박물관도

우리 둘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사람들에 치일 필요도 없고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할 것들도 많이 없었습니다.


우리 둘이 혹은 여니가 태어나곤 우리 셋이, 전세 낸 것처럼

신나게 그곳을 누리며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바빠 같이 못 다닌다고 내 아이들은 어디든 못 간다고

투덜거리다가 싸우기도 하고

주말이 되면 아빠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는

제 처지를 비관해 울었습니다.



후니가 태어나고 3-4개월이 되었을 때

선물 받은 아이 옷을 바꾸러 유모차를 끌고 쇼핑몰에 갔는데

컵 홀더에 걸어둔 커피를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치고 갔습니다.

커피가 바닥에 엎어지며 떨어졌는데

제 뒤로 아주머니가 짜증을 내며 소리치며 지나가셨습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아이를 끌고 나오면 어떡해요!! 진짜 길도 좁은데!!"


부랴부랴 물티슈를 가방에서 꺼내

바닥을 닦으며

초보 엄마인 저는 얼마나 난처했던지.


유모차를 끌고 돌아오는 길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유모차를 끌고 나왔는데

길을 찾으며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횡단보도 앞 턱에 유모차가 걸려 아이가 도로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아이 얼굴에 스크래치가 나고 아파 우는데


차라도 지나갔으면

아이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하고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유모차를 끌며 집으로 걸어올 때도

그렇게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면

저는 서서 가더라도 아이들을 앉아야 편안 저는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앉히더라도

자리의 여유가 있지 않으면 저는 앉지 않았지요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분이

두 아이가 앉아 있는 곳에

엉덩이를 들이미시며 앉으려고 하셨습니다.

다른 자리도 있었기에

할머니 여기 아이가 앉아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그 많은 승객들에게

" 몇 정거장에 안가 내릴 건데 자리를 좁혀주질 않아! 요즘 것들은 양보를 안 해 " 하며

하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다라고요.


아이들 귀에 나쁜 소리가 들릴까

아이들에게 일부러 다른 주제 이야기를 하며

애써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일어나게 하고 앉으시라고 했어야 했나... 싶어



그때 저는 목이 따끔거려

눈물이 나올까 애써 꾸욱 참아 냈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가

혼자 자유롭게 다녔던 어떤 곳도

아이가 있으니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줄임말, 맘충이라고 하죠

개념 없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

아이들을 조심시키며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에

최대한 몸을 낮추며 다닌 나날 들이였습니다.










그래도 나갔습니다.


아이에게 이 세상의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몸을 낮춰야 하는 것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엄마인 제 몫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도 배워갔을 것이고요.





혼자 아이를 이고 매고 끌고 다니니

몸은 힘들었지만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아이가 하나였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아이가 둘이니 몇 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갔습니다.







외박으로 아이를 데리고 어디 간다는 것은 남편이 절대 허락지 않았기에

제 두발로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뚜벅뚜벅 잘도 걸어 다녔습니다.



후니가 우주를 좋아할 땐 우주 박물관으로

역사를 좋아할 땐 역사박물관으로

곤충을 좋아할 땐 곤충박물관으로

자동차를 좋아할 땐 자동차박물관으로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미술관으로

이 동네 저 동네 도서관으로

이 아파트 저 아파트 각양각색의 놀이터로



생각보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지하철이 어디든 연결되어 있었고

동네마다 도서관들이 너무 잘 되어있었습니다.

아파트들은 저마다 다른 놀이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더 신나게 놀았습니다.



더 깊게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책 속의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



백문이 불여일견



아이에게 백 권의 책 보다 경험이 중요한 것을

다녀오면 알게 되었습니다.




기관에 다니지 않았기에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 갑갑할 때면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갔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더 많은 곳을 데리고 갈걸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다녀봤으니 다행입니다.



코로나 시기가 끝나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저는 아이들 체험학습을 신청해서라도

결석을 해서라도 많은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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